
봄이면 노랗게 피어나는 제주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 땅 곳곳에서 ‘4‧3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유채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제주의 유채꽃은 유난히 샛노랗다.
유채꽃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지난 4일. 4‧3 희생자유족회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한 양윤경 씨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4‧3 이후 세대에서 첫 4‧3 희생자유족회장이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어깨가 대단히 무겁다. 내가 선출된 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족회를 이끌어달라는 의미인 것 같다.”
- 4‧3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우리 집안의 종친이 4‧3 때 처참하게 죽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다. 내가 갓난애였을 때 집안 어르신들 결정으로 아버지의 양아들이 됐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4‧3과 인연을 맺게 됐다.”
5년 전 양윤경 씨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면서 아버지의 유골을 봤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의 두개골에는 총상으로 생긴 구멍이 있었다고. 양윤경 씨는 이 말을 하면서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 몇몇 보수단체에서 계속 ‘4‧3 흔들기’를 해오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건가?
“4‧3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여기에는 분명 가해자가 있다. 우리는 그 가해자를 용서하고 계속 대화할 거다. 우리를 헐뜯던 경우회도 지금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다른 보수단체들도 바뀔 거라고 믿는다.”
- 내년에 국정교과서가 나온다. 몇 년 전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처럼 4‧3에 대한 역사 왜곡이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 건가?
“4‧3 사건은 국가에서 만든 진상보고서로 하나의 진실만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왜곡하는 교과서가 나온다면 다른 4‧3 단체들과 함께 강력하게 대응할 거다.”
- 유족회장으로서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
“해마다 4‧3 피해자 어르신들이 돌아가신다. 하루 빨리 피해자 배‧보상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배‧보상 문제 관련 전담 기구를 만들 거다.”
4월이면 유채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고, 양윤경 회장도 4‧3 추념식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만발한 유채꽃들이 서로를 위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