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증거’
제주박물관서 7일 ‘특별전’ 시작
“여러분, 고산리유적을 아십니까?” 경위도로 표시하면 제주도 최서남단인 동경 126° 12′·북위 33° 17′입니다. 이 유적은 당산봉과 수월봉 사이로 흐르는 작은 하천 ‘자구내’를 중심으로 펼쳐진 너른 대지의 바닷가에 있습니다.
고산리유적은 약 30년 전인 1987년 ‘자구내마을’의 남쪽 밭에서 돌로 만든 창(石槍) 등 뗀석기 3점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국고고학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통을 이은 작은 석기들과 신석기시대의 토기조각들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이어주는 과도기 유물들이었습니다.
그리해 학술적·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고, 1998년 12월 23일에 국가 사적 412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학술조사를 거쳐 무려 2만여점이 넘는 유물들이 수습됐으며, 해마다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고산리에서 발견된 토기는 식물성 줄기를 섞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입니다. 연대측정 결과 약 1만년 전에 만든 것으로 밝혀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最古)의 토기입니다.
고고학에서는 어떤 지역이나 시대를 대표하는 독특한 유적·유물이 드러나면, 그 지역의 유적·유물 명칭을 따서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고산리에서 발견된 토기는 처음 보는 것이라 ‘고산리식토기’로 명명돼 고고학개설서에 실려 전국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산리식토기’는 제주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그럼, 고산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요? 약 1만년 전에 만들어진 ‘고산리토기’는 이후 고산리 외에 도내 20여 곳에서 발견돼 고산리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제주도내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문도 있습니다. ‘고산리식토기’를 만든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1만년 전 고산리사람들이 자체적으로 고안해 만든 것인지? 아니면 멀리 일본이나 러시아의 아무르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온 것인지? 지금은 모릅니다.
다만, ‘고산리식토기’와 비슷한 토기의 연대는 일본에서는 약 1만5000년 전, 러시아에서는 1만2000년 전에 만든 것으로 확인돼 더 많은 비교연구가 필요합니다. 어쨌든, 한국 신석기시대는 한반도와 중국과 일본열도의 중심에 있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봄을 맞으며 제주 고산리유적을 비롯해 한국 신석기문화를 소개하는 기획특별전 ‘제주 고산리, 신석기시대를 열다’를 마련했습니다. 전시는 ‘따뜻한 시대의 시작’과 ‘신석기시대의 시작, 제주 고산리유적’, ‘따뜻함이 준 풍요로운 먹거리’, ‘자원 활용의 도구, 토기’, ‘신석기인의 매장 풍습’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선 전국에서 수집한 한국 신석기시대의 대표 유물 6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아울러 관람객 여러분께서 전시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학습·유적 답사·교원 초청 설명회·큐레이터와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했습니다.
약 1만년 전에 시작돼 8000년 동안을 이어온 한국의 신석기문화는 제주도에서 형성됐습니다. 빙하가 물러간 신석기시대의 새로운 환경에 인류가 어떻게 적응했는지? ‘고산리식토기’와 후기 구석기 전통을 갖는 석기들과 더불어 한국 신석기문화의 흐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전시는 오는 7일 오후 4시부터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부디 오셔서 고산리 석기와 제주만의 ‘고산리 토기’ 등 한국의 신석기문화를 시작한 ‘증거’들을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특별전이 오랜 문화의 터전 고산리 유적의 가치를 널리 알리며 제주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기회도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