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불법 입국 통로 악용 빈발
중국인 관광객 유치 위해 2002년 도입
무단 이탈 ‘급증세’···적발률 29% 불과

무사증 입국 제도를 이용해 제주에 들어온 후 무더기로 사라진 베트남인들이 12일부터 합법적 체류 기간인 30일을 넘겨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다. 이들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이미 제주를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무사증 입국 제도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 확대에 기여하고 있지만 밀입국 통로로 악용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도입에 따른 빛만큼 그림자도 짙은 것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2회에 걸쳐 무사증 입국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제주 방문 시 30일간 비자를 면제해 주는 무사증 입국 제도는 2002년 5월 도입됐다. 관광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제도 도입에 따른 효과는 당초 기대했던 것과 달리 미미했다. 입국 대상이 제주도지사 또는 제주도관광협회가 초청하는 5인 이상 단체 관광객으로 제한됐던 탓이다.
그러다 무사증 입국자는 2008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기 시작했다. 초청확인서 제도가 폐지되면서 단체 뿐만 아니라 개별 관광객에 대해서도 무사증 입국이 전면 허용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5년간 무사증으로 제주에 들어온 외국인은 2011년 11만3825명, 2012년 23만2929명, 2013년 42만9221명, 2014년 64만5301명, 지난해 62만9724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무사증 입국 제도가 그 취지대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 확대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입된 무사증 입국 제도가 밀입국 통로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무단 이탈자는 2011년 282명, 2012년 371명, 2013년 731명, 2014년 1450명, 지난해 4353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적발 건수는 2010년 89명, 2011년 53명, 2012년 147명, 2013년 172명, 2014년 602명에 그치는 등 적발률은 29%에 불과한 실정이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무단 이탈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공사 현장이나 식당 등에 불법 취업했을 가능성만 점쳐질 뿐이다.
이는 30일간 비자 없이 제주에만 머물 수 있는 무사증 입국 제도가 사실상 불법 체류 경로로 악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지난달 12일 제주에 관광 온 베트남인 155명 중 59명이 하루 뒤 종적을 감췄는데 무사증 외국인 50여 명이 한꺼번에 숙소를 이탈한 것은 제도 도입 이래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베트남인 31명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지난달 12일 오전 제주에 입국한 이들의 합법적 체류 기간은 11일까지로, 12일부터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다.
이들이 제주에서 검거된다면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가, 다른 지방으로 붙잡힌다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잠적한 베트남인 31명의 신병 확보를 위해 추적에 나서고 있지만 30일이 되도록 이들의 행적과 관련한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무사증 외국인의 무단 이탈이 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불법 체류자는 신분상의 불안정으로 인해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욱이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볼 수 있음에도 정확한 소재지 등을 파악하기 조차 어려워 사실상 당국의 관리·감독 밖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도내 외사 분야 전문가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불법 체류자들이 반항적으로 변하거나 감정이 폭발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불법 체류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볼 수는 없지만 범죄자가 될 개연성이 있는 만큼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