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안양을 걷는 오늘의 제주도
어제의 안양을 걷는 오늘의 제주도
  • 송경호
  • 승인 2016.0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양공원 과거 ‘큰 인기’ 후 쇠락
정비·예술화 등 회복 노력 ‘무위’
하천·산이 콘크리트에 밀려난 탓

제주 안양의 전철 밟고 있어 걱정 
자연 걷어내 인공구조물 건립
제주다운 제주만의 것들 지켜야

필자는 안양예술공원이라는 곳에서 일한다. 공원 안에 사무실이 있다. 이 공원은 1950년대에 안양유원지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960~70년대에는 서울을 비롯한 가까운 도시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안양유원지는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테마파크 등 레저산업이 자라면서 경쟁력을 잃었고, ‘난립한 무허가 건물들’과 ‘무질서한 행락문화’도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걸 바로 잡는다고 안양시는 5년여 세월 400억 원 넘게 예산을 쏟아 부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4년까지 벌인 이른바 ‘안양유원지 정비사업’이다.

정비사업 이후에는 ‘예술’로 승부를 걸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예술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설치했다. 간판도 이 무렵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꿔 달았다. 그러나 반향은 미약하다.

재정비 이후에도 얼추 10년 세월 ‘예술공원 명소화’란 이름으로 많은 자원이 투여됐지만 마찬가지다. 내리막이 오르막으로 바뀌는 징후는 여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 옛날 영화롭던 시절을 불러내기 위한 노력은 애달프지만, 아쉽게도 그날들은 다시 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많은 돈을 들였고 들이고 있음에도 처방이 먹히지 않는 이유 말이다. 날마다 예술공원 한복판 사무실에 앉아 궁리한 끝에 겨우 얻은 답은 단순하다. 왕년의 ‘안양유원지’가 가졌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들 때문이다. 그건 돈 들인다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 ‘영화’를 되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 안양유원지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단 2가지. 계곡 사이로 흐르는 풍요롭고 맑은 물, 그리고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2개의 산이 빚어내는 풍경이었다. 계곡 따라 흐르는 물은 그 자체로 놀거나 즐길 거리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천을 굽어보며 마주한 두 산은 사시사철 녹음과 단풍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정비사업 즈음 물은 빠른 속도로 줄었고, 산의 풍경은 사라졌다. 하천은 메말라 온갖 잡풀이 무성하고, 산들은 높고 큰 콘크리트 구조물 뒤로 가려졌다. 산과 산 사이 병풍처럼 들어선 건축물 뒤로 물러난 산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지 못한다.

과거 유원지의 주인이 자연이었다면, 오늘날 예술공원의 주인은 사람과 인공구조물인 셈이다. 자연이 주인이었던 유원지는 그 자연스러움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공구조물은 그렇지 못하다. 뜬금없이 서울 변방도시의 오래된 공원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도처에서 개발 광풍이 불고 있는 제주가 걷는 길이 안양유원지가 걸어온 길과 비슷하게 보여 걱정이다. 사람들은 제주의 자연에 매료돼 불원천리 달려오는데, 제주는 자연을 걷어내 온갖 인공구조물로 채우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와 거대한 규모로. 덩달아 제주의 ‘제주스러움’과 자연의 자연스러움은 점점 사라지고, 뭍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들이 크게 늘어가고 있다.

이런 바람이 몇 년 더 분다면 단언컨대 제주를 찾는 발길은 크게 줄어들 거라 본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뭍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굳이 제주를 찾은 이유는 없을 테니 그렇다. 재외도민인 필자조차 요즘 제주의 상황이 마뜩찮다.

예술공원의 앞날을 고민할 때마다 오늘의 제주가 오버랩 된다. 어제의 예술공원의 전철을 오늘의 제주가 걷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제주는 그런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많은 곳이 무너지고 지워진 터,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오름과 곶자왈·벵듸·돌담·빌레·용암동굴 등 제주만의 것들은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서지고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다.

대자연이 만든 명소가 명소로 오래 갈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자연을 자연스럽도록 내버려 두는 것뿐이다. 안양예술공원의 오늘이 일깨워주는 가르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