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우선, 자동차는 그 다음”
“사람이 우선, 자동차는 그 다음”
  • 강동수
  • 승인 2016.0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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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보행자 사고 OECD 최고
문제는 자동차 중심의 법체계
단적인 예가 ‘무단횡단’ 범죄 취급

미국 횡단보도 없어도 보행자 우선
주거지에선 차도횡단도 합법
법령 등 안전한 보행권 확보 시급 

보행자 교통사고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4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우리나라 보행자수가 1910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의 40.1%를 점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해를 거듭해도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의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전국 평균의 2배인 7.74명에 이를 정도로 최악의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반인권적이고 후진적인 보행사고 다발국가라는 오명을 제주도가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행자 교통사고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은 제주도가 관광지라는 지역적 특성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현지 교통상황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광 기분에 들떠 사고를 일으키고 사고를 당하는 동일한 처지의 보행자가 많기 때문이다.

보행은 가장 기본적인 교통수단이다. 걸어서 등교하거나 가까운 수퍼마켓에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 보행이 통학이나 쇼핑을 위한 통행의 수단이 된다.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걸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급속도로 대중화된 자동차가 교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부분의 보행자는 일상적으로 ‘걸을 권리’를 침해당했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분위기에서 보행 교통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교통관련 법률에 보행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부 개선이 되기는 했지만, 법체계는 여전히 자동차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단횡단이라는 용어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 같다.

무단침입이나 무단도용과 같이 범죄행위에 덧붙여서 통용됨으로써 ‘무단횡단자는 범법자’라는 이미지가 국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횡단보도 이외의 장소에서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냉혹한 분위기마저 형성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정부나 국민들이 말하는 무단횡단자가 범법자일까? 현실적으로 외곽지역의 도로 가장자리 부근은 보행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불가피하게 차도를 걷게 된다. 주거지내 생활도로의 경우도 도로 양쪽으로 노상적치물과 불법주정차 차량 때문에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면도로의 접속으로 보도가 단절된 차도부분은 또 어떻게 건널 것인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차도를 보행 또는 횡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보행자를 탓할 수도 없다.

미국 연방정부는 횡단보도를 노면표지로 보행자가 횡단할 수 있도록 따로 표시한 차도부분 외에도 교차로에서 보도경계석과 대지경계선을 연장한 교차로 내 가상의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상당수 미국의 주법(州法)에서는 교차로에서 떨어진 차도를 횡단할 때에는 보행자가 차량에게 양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교차로 부근에서는 횡단보도나 횡단보도 표시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보행자에게 횡단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육교나 지하도가 있는 곳에서도 차량에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차도횡단을 보장해 주고, ‘주거지역에서 차도횡단을 합법’으로 간주하는 법체계는 우리나라의 법현실과 크게 다르다.

보행자의 통행공간이 홀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보행권의 의미에 부합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보행자의 통행경로인 보도·횡단보도 등 기존의 보행공간 외에도 보도단절구간·이면도로·횡단보도 주변 등에는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 보행권 확보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국토교통부의 슬로건처럼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우선할 수 있도록 법령개정과 함께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위한 시설개선이 시급하다. 무단횡단이라는 용어도 자동차 중심주의가 만들어 낸 잘못된 산물이기 때문에 ‘임의횡단’과 같은 순화된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마치 범죄인 취급하듯이 차도를 횡단하거나 보행하는 보행자를 바라본다면 우리의 교통문화는 개선되지 않는다. 보행자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하게 보행권을 누릴 수 있도록 입법조치와 함께 보행환경이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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