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 선거구 출사표 예비후보
‘원 지사 출마 권유, 시장 내정설’
시중 소문에 당사자 “음모” 주장
비서실장 이례적으로 후보행사 참석
정황상 ‘카더라 통신’ 사실일 수도
공정한 선거위해 선관위 조사 필요
최근 도내 4·13총선 예비후보의 출마 기자회견 기사를 보다가 한 단어에 눈이 꽂혔다. ‘마타도어(Matador)’. 음험한 정치판이 연상됐다. 마타도어는 흑색선전과 같은 의미다.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고, 내부를 교란시키는 수법이다. 선거판은 마타도어의 만물상이다. 공명선거가 강조되면서 많이 줄기는 했지만 선거판에서는 아직도 별의별 마타도어가 횡행한다. ‘카더라 통신’도 마타도어의 한 유형이다.
요즘 지역에서는 서귀포시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강영진 예비후보와 관련한 카더라 통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원희룡 지사가 출마를 권유했고, 낙선하면 서귀포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난 17일 강 후보 출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강 후보는 “마타도어”라고 일축했다.
기자회견 기사의 맥락을 보면 강 후보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시중에 떠돌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강 후보가 마타도어의 대상이 될 만큼 비중이 있는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새로 출범한 (주)제주일보방송의 제주일보 편집국장에 임명된 지 2개월여 만에 직을 사퇴하고 출마했다. ‘터 닦기’ 행보도 없이 전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기자생활 20여 년 동안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다. 현재로선 강 후보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중심에 놓일 유력 후보가 아닌 듯하다. ‘서귀포시장 내정설’은 그가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특히 ‘지사의 출마 권유설’은 결과적으로 강 후보를 유리하게 하는 건데 그것을 일부러 흘릴 후보가 있을까. 소문을 마타도어로만 볼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원 지사 비서실장이 강 후보 회견장에 모습을 보이면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겼다. 지사 비서실장은 통상적으로 특정 후보의 행사장을 찾지 않는다. 지사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한다. 이번에 비서실장의 처신을 두고 일각에서는 “뭐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원 지사는 시중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 18일 서귀포시 연두방문 때 강 후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원 지사는 “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으며, 더 이상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풍문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강 후보 출마는 고교 동문인 야당의 유력 후보 견제용” “야당 후보를 돕던 그의 형이 돌아섰다”는 등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런 루머가 강 후보를 음해하려는 흑색선전일 수도 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안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강 후보를 둘러싼 소문이 흑색선전인지 여부를 가려야 한다. 후보들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관련 조사가 시급하다.
이번에 실체적 진실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선거와 관련해 자리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의식의 저급성이 우리사회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마타도어든 아니든 ‘보험용’으로 시장직을 약속하고 선거 출마를 권유한다는 발상 자체가 고약하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강 후보의 거취는 도민사회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낡은 폐습이 재연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대권을 꿈꾸는 원 지사에게 이번 총선은 중요하다. 제주에서 자당(自黨)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많이 당선돼야 향후 대권 가도에 힘을 받을 것이다. 명색이 집권당 잠룡(潛龍)이다. 성적이 나빠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지역의 선거판세는 여·야 없이 녹녹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당선이 확실한 후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원 지사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마음속에 두고 있는 후보를 띄우게 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자제해야 한다. 정치적 입지를 염두에 두고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다 자칫 무리수를 둘 수 있다. 속된 말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걸다 큰일을 망칠 수 있다. 강영진 후보 출마 권유설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하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