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아버지’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 안혜경
  • 승인 2016.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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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미끄러져 팔꿈치 부상
90앞둔 아버지 딸 걱정 매일 전화
어릴 적 추억부터 사랑 그 자체

최근 ‘이승만 국부론’ 발언 문제
종신집권 노리다 쫓겨난 정치인
‘부패한 학살자’에 국부 언감생심

연초부터 사고를 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철봉을 하다 떨어져 팔뼈에 금이 가서 한 달여를 깁스하고 지냈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니, 그 만하면 별 탈 없이 잘 지낸 편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난 부상은 아니었지만, 헛디뎌 미끄러질 때 온 몸의 체중을 한 팔로 버텨내며 주변의 위험한 물체들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느라 팔꿈치 부근에 약간의 이상이 생겼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흔을 바라보는 연로하신 아버지는 딸이 걱정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신다. “나 새끼, 아픈 건 어떠냐~” 하시면서, 병원엔 잘 다니고 있는지, 팔에 무리가 가는 일은 안 하고 있는지, 주변 지인이 팔 다치고 소홀하다 오랜 지병이 되어 고생한다더라 등등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내겐 한라산 숲과 계곡에서 시원한 여름방학을 보냈던 보물 같은 어린 시절 추억이 있다. 또 어디를 다녀오던 길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에 없지만 “아버지 손은 난로다”고 하시며 따뜻한 아버지 손에 쏙 들어가는 내 손이 아버지 호주머니에 넣어져 눈 내린 관덕정 길을 함께 걸어 집에 돌아오던 아련한 기억도 있다.

아버지는 80세가 되었을 때 암을 겪고 큰 수술을 받아 갑자기 쇠약해지셨으면서도 오히려 “어이고~나 새끼, 아픈 데는 없냐?”, “운전 조심해라~” 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시며 젊은 딸을 걱정하신다. 아버지 사랑의 부재는 내겐 상상 불가능의 세계다.

요즘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 가슴 환해지는 소식을 듣는 일이 점점 귀해진다. 자연 재앙과 테러도 딱 하루만 거르기도 힘들 만큼 잦다.

그 뿐이랴. 특별한 안락이나 거대한 꿈의 실현이 아닌, 지난 역사를 여러 층위로 기억하고 알리는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이 그것을 방해하는 정부로부터 사력을 다해 국민이 지켜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일상의 소소한 평화를 누리는 것은 오히려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큼 사치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존재란 무엇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되묻게 된다.

국민의당 한상진 창당위원장이 이승만을 건국이니 자유민주주의 도입이니 하며 ‘국부론’을 들먹였다. 그것도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참된 민주적 절차를 요구하며 시위에 참여한’ 희생자들이 묻힌 4·19묘역을 참배한 직후의 일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이승만은 1948년 대통령이 되어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거쳐 종신집권의 가도를 달리다, 4·19 혁명으로 하야했다. 집권 중에 ‘고마우신 우리 대통령’ 노래를 학교마다 부르게 했고, 그의 탄생일은 나라의 공식 행사가 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민족의 태양’이란 칭호는 4·19 이후 그의 동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현행 헌법 하에서 이승만이 ‘국부’란 주장이 전파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제주는 어떠했는가? 무고한 도민들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당했다. 조국 교수도 트위터에서 “1919년 임정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면, ‘건국의 아버지’는 임정 수반을 위시한 요인들이다. 김구 주석이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승만의 경우 임정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1925년 탄핵되어 축출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7살 난 아들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하여 냉동실에 4년여 보관하다 유기한 비정한 아버지의 소식이 들렸다. 너무도 끔찍한 소식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게 아버지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던’ 분이다. 당신이 노쇠해진 것도 잊고 다 장성해 분가한 자식마저도 늘 안위를 걱정하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분이다. 자식을 죽이고 사체마저 훼손해 냉동 보관하다 유기하였다면, 아버지라서 더욱 사악하기에 아버지 자격은 당장 박탈돼야 할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부라는 말 자체도 터무니없거니와 부패한 학살자에겐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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