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1월 대한민국이 지정
11주년 불구‘브랜드’ 사실상 방치
평화적 역할 수행 크게 미흡
중앙 무관심과 도정의 ‘패착’ 때문
평화는 제주미래가치 키우는 일
중앙·지방 정부 관심 절실
벌써 11년이다. 제주 평화의 섬 얘기다. 제주도는 2005년 1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지정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제주 평화의 섬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며 평화의 섬 성공에 대한 확신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뿐이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며 제주 평화의 섬 브랜드는 방치되다시피 했다.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되면 세계평화를 위한 교류·협력과 연구의 거점으로 육성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으나 ‘아직까진’ 아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란 화두가 시작된 1991년4월19일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방문과 한·소 정상회담 이후 중국 장쩌민, 미국 빌 클린턴,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한반도 주변 열강 정상들이 제주를 찾아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상회담 등을 가졌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섬 지정 이후엔 이런 ‘거물’들의 방문이 단 1차례도 없었다.
중앙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외국 국가 원수들의 방한이 있었다. 제주를 평화의 섬, 세계평화를 위한 담론의 장으로 키울 생각이 있었다면 정상회담 장소를 제주로 할 수 있었다.
지방정부도 잘못했다. 마인드에 문제가 있었다. ‘제주 평화의 섬’이란 상품을 내놓았으면 시장침투 전략 등을 치밀하게 마련하고 실천해야 하는 데 제주특별자치도는 그러질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해군기지 유치였다고 본다. 평화의 섬 브랜드에 역행하는 선택이었다. 총칼과 평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강제된 평온일 뿐이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해군기지를 유치했다.
이유는 건설과 인구 유입 등에 따른 경제적 효과였다. 그러나 2006년12월 제주도 민·관T/F팀이 추산한 해군기지 건설기간 실제적인 도민소득 증대효과는 총예산의 18%인 1400억원에 불과했다.
경제적 효과도 크게 얻지 못하고 치유되지 않는 갈등만 양산하고,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제주 평화의 섬 브랜드마저 훼손한 셈이다. 소탐대실이다. 당장 손에 쥐어주는 몇 마리의 물고기를 탐하다 나중에 더 많은 물고기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찢어버린 우를 범한 것만 같다.
제주도의 또 다른 큰 실수는 제주평화포럼에서 평화를 빼버린 것이다. 제주포럼은 2001년 ‘제주평화포럼(Jeju Peace Forum)’으로 시작됐으나 2011년 6회부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Jeju Forum for Peace and Prosperity·약칭 제주포럼)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매년 외형적으론 성장하고 있으나 ‘평화’가 빠진 데 따른 아쉬움이 크다. 제주포럼은 평화가 정체성인데 평화 대신 번영이 강조되면서 주요 초청 대상자가 유명 투자자나 CEO에 치우치는 등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평화’라는 포럼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평화의 브랜드로 제주를 키우는 것이 ‘그물’, 즉 미래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제주에서 북핵문제 해결 등을 위한 6자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세계의 이목은 제주로 집중되며 ‘평화의 섬’ 이미지가 부각될 것이다.
아시아에서 경제분야에선 ‘대국’ 중국의 보아오포럼이 있는 만큼 제주는 평화에 집중하자. 그리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큰 틀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평화를 위한 식량·교육·환경 문제 등을 논하는 자리로 키워나가면 된다.
다행인 것은 원희룡 도정의 제주포럼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다. 원 지사는 제주포럼의 동북아 지역갈등에 대한 평화의 플랫폼 역할을 강조하며 지난해 포럼에선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각국 전직 정상들을 초청하고, 평화·외교·안보 세션을 많이 운영했다.
세상만사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브랜드 가치도 마찬가지다. 선언했다고, 시장에 출시한 것만으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마케팅이 필요하다. ‘출시 11년’을 맞은 제주평화의 섬이 제주의 미래가치가 될 수 있도록 중앙 및 지방정부의 응답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