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통역 자원 봉사로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 회원들의 자긍심과 보람이다.
지난달 6일부터 15일까지 서귀포농업기술센터와 감귤박물관 일대에서 펼쳐진 ‘2015 제주국제감귤박람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이면에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컸다.
특히 박람회 기간 내내 젊은이들 못지 않은 열정을 뽐내며 곳곳에서 영어 통역 자원 봉사를 맡았던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회장 강근봉)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 곁에서, 박람회장 한 편에서, 그리고 안내 부스에서 묵묵히 영어 통역 자원 봉사를 하며 숨은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귀포시의 한 공무원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등 성공 개최를 위해 헌신했다”며 이들의 열정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55세 이상 시니어를 주축으로 지난해 9월 결성된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은 현재 2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귀포시 중앙로 예일외국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 서로를 알게 됐다.
이들은 은퇴 이후 영어를 다시 시작하면서 배움의 길로 들어섰지만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인을 만나면 당황하고 입도 잘 열리지 않는 이들이었지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현재는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영어 실력이 늘자 자신감이 생겼다. 영어 실력을 활용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을 했다. 통역 자원 봉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서귀포시니어클럽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강근봉(68)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 회장은 “제주가 글로벌화 돼 가고 있다”며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 회장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통역 자원 봉사를 하는 것이 제주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지난해 ‘2014 제주국제감귤박람회’에서도 통역 자원 봉사를 했다. 이번 제주국제감귤박람회는 회원들이 경험하는 두 번째 박람회였다.
첫 번째 박람회 때보다 영어 구사 능력은 향상돼 있었고, 안내는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통역을 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특히 회원들은 통역 자원 봉사를 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입을 모은다.

한 회원은 “이 봉사를 처음 할 때만 해도 영어를 배운 지 수십 년이 지난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회원들과 함께 웃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최근 서귀포시로부터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았다. 이름을 알리고 상을 받기 위해 통역 자원 봉사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감사패 수상은 뿌듯한 기억이다.
회원들은 행사가 끝나고 회의를 통해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가 하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 회비를 따로 걷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불편한 점은 없다.
회원들은 도내에서 열리는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해오는 일도 잦아졌다.
한 여성 회원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통역 자원 봉사로 제주를 알리고 있다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기도 한단다. 회원들은 은퇴 이후 통역 자원 봉사로 제2의 인생과 보람을 찾았다고 했다.
지금은 영어 통역 자원 봉사를 하고 있지만 내년 2월부터는 다양한 외국어 통역 자원 봉사단으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강 회장은 중국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회원들을 확보하는 등 서귀포외국어봉사단 출범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회원들은 도서관을 드나드는 등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강 회장은 지난 3월에 열렸던 ‘제2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당시 회원들의 열정을 잘 나타내는 일화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네팔인들이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현장을 방문해 전기자동차 인프라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부탁했는데 생활 영어만 구사할 줄 아는 회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문 동시통역사가 통역에 나섰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회원들은 “저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행사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자”고 다짐했다고.
강 회장은 “남들은 취미와 여가를 통해 인생을 즐길 시기에 회원들은 통역 자원 봉사를 통해 넉넉한 보람을 얻고 있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국제 행사가 있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어 “남은 시간이라도 배우고 나눌 수 있으면 그것이 사는 보람이고 기쁨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회원들과 함께 지역사회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똑같이 주어진 하루를 의미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애써 계획을 짜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강 회장을 보면서 인생은 어쩌면 70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 회장을 만난 날 그의 집 안 탁자 위에 놓여있던 노트에는 그가 영어 통역 자원 봉사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퇴직 후 통역 자원 봉사 소임 있어 행복”
강근봉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 회장은 “은퇴 이후 주어진 시간 앞에서 즐겁게 매진할 수 있는 소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은 이어 “퇴직 후의 삶은 그 무료함과 허탈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에 따라 제2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며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에너지가 생기고 의욕도 샘솟는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또 “통역 자원 봉사를 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방면으로 활동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회장은 “내년에는 서귀포시니어영어클럽을 서귀포외국어봉사단으로 확대해 다양한 외국어 통역 자원에 나설 것”이라며 “앞으로 회원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