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대중교통을 타고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시장은 무엇을 얼마에 사고파는지, 어떤 것을 먹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고 가는지 등은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의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문화를 느낄 수 있어 관광객이 어느 도시를 방문하면 들리곤 한다. 도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벤치마킹 차원에서 이진희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의 스페인 공무국외여행 답사보고서(조사일시 2015년 10월15·16일)를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까탈루니아 지방은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다양하고 풍부한 식재료로 유명한 곳이다. 바르셀로나는 도시구역 내에 크고 작은 시립시장이 39개가 있고 각 시장이 1㎞미만의 거리에 이웃하고 있어 어느 동네에서나 시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재래시장은 지역의 경제·사회 중심이었지만 대형백화점·쇼핑센터·할인매장이 등장하면서 경쟁력은 급격히 하락, 대부분이 사라졌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재래시장도 경영환경은 열악하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건축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산타 카테리나 시장(Santa Caterina Market)은 성공적인 도시재생과 함께 화려하게 재기한 곳이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중세도시로서 많은 역사유산을 간직하고 있는데 1992년 하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점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유럽에서 모범적인 도시로 평가받는다. 1997년에 새롭게 재생된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보존과 개발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이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서부(Av Icaria, 145-147), 고딕 지구 중심부의 관광명소로 산타 마리아 델 마르의 중세 교회와 대성당 사이의 좁은 길에 위치한다. 이 시장은 1848년에 지어져 오랜 16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이지만 낡고 허름했다.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현대화에 실패, 계속 낙후됐고 20세기 후반에는 시장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바르셀로나시는 1997년에 시장의 재생을 결정하고 현상설계를 실시했다. 시는 낙후된 재래시장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시장이나 쇼핑센터를 조성하는 대신에 기존 재래시장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차장·공공공간 등 필요한 시설을 추가하는 방식을 모색했다.

재개발을 논의하던 상인들과 시청 공무원들은 산타 카테리나 시장의 재기를 꿈꾸며 당시 가장 유명한 엔릭 미라예스와 베네데타 타글리아부(EMBT)라는 스페인 건축 회사에 설계를 의뢰했다. 바르셀로나 시가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한 창조적이고 혁신적 개념에 따라 기존 재래시장의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거대한 양탄자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시장 전체를 덮었다. 신선한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수준 높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엔릭 미라예스 팀은 지붕은 지중해의 항구도시 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3개의 거대한 강철 트러스를 설치하고, 목재를 정교하게 엮어 지붕을 만들고, 위에 32만5000개의 전통적 세라믹 타일을 덮었다. 파도치는 듯한 역동적인 형태의 지붕에 타일은 육각형으로 오렌지색·레몬색·보라색·녹색 등으로 강렬했다.
건축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중의 하나는 부지에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 주변의 땅을 파다 만 흔적은 고대유물이 땅속에 있어 유적을 그대로 두고 유리 지붕으로 막고 고증을 통해 ‘유적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바르셀로나시는 산타 카테리나 시장에 주차장을 추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서민주택과 공공공간을 단계적으로 계획, 주변의 활성화에 주력했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의 성공적 재생은 오랫동안 경제적·사회적 활동의 중심으로 자리한 역사적인 재래시장의 공간적 원형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상업공간 조성 덕으로 분석된다.
상점은 100여 개에 달한다. 직접 구워서 파는 빵가게, 과일가게, 과자가게, 꽃 가게, 와인가게, 정육점, 조리도구를 파는 상점 등 어느 시장처럼 다양하다. 넓고 청결한 통로에 현대적인 냉장 시스템이 갖춰진 판매대 위의 생선은 갓 잡아 올린 듯 신선하게 느껴진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자연스러운 경사로 위의 과일도 색 조화가 잘 된 한 폭의 그림 같다.
재래시장내에 대형 슈퍼마켓도 있지만 시장에서 팔는 1차 상품을 제외한 휴지·그릇·앞치마 등 공산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상생하면서 보완하는 모습이다.
재래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지만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늙음을 낡음으로 방치하지 않고, 혁신으로 탈바꿈시킨 시장으로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다양한 해산물과 달고 맛있는 과일이 있고, 한입거리로 포장한 음식을 사 먹으며 기분 좋게 쇼핑할 수 있는 곳이다.
먹으면서 천천히 쇼핑을 하면 쇼핑시간이 늘어나고, 시장의 매출액도 증가할 것이다. 상품 진열방식도 특별하여 오렌지·키위·망고 등을 탑처럼 쌓아놓고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과자가게·과일가게·하몽가게 등의 앞에는 물건을 사는 손님보다도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이 더 많아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로 홍보되어 해마다 관광객이 증가하여 지역경제에도 큰 효과를 주고 있다.
<제주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