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800억원에 달하는 명시이월(明示移越) 예산을 놓고 제주도의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제주자치도가 일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불승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제주도가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제출한 명시이월 사업은 모두 480건에 금액으론 4872억6300만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제2회 추경(追更) 당시보다 건수(34.1%)나 사업비(52.7%)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특히 전체 예산액 3조8358억7900만원의 12.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시이월’이란 세출 예산을 다음 연도로 이월하는 것이다. 이월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효율적인 예산 편성이 이뤄지지 않았고, 사업의 적정성이나 예측이 미흡하다는 것을 반증(反證)한다.
물론 올해부터 지방자치단체의 회계업무 ‘연도폐쇄(예산집행) 기한’이 2개월 단축됨으로써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난해 5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더욱이 2회 추경 시에 도의회는 해당 예산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리며 제주도에 예산 집행(執行)을 독려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월이 지난 현재 오히려 명시이월액이 대폭 늘어난 것은 ‘제주도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올해 연도폐쇄 기한은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그 안에 5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집행하거나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명시이월 예산으로 넘길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도의회가 과연 어떤 처방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