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제주변화 가히 혁명적
‘변방’서 관광객 2000만의 섬으로
변화·성취에 대한 우려도 크다
그럴듯한 포장 ‘지속가능한 개발’
개발 갈등과 방황, 발전의 지향점
냉철한 이성으로 성찰해야
한라산 서북벽에 소중한 생명체가 있다. 돌매화다. 언제부터 정상에 머물렀는지 모르지만 숱한 세월, 선 채로 비바람을 견디어 온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라고 한다. 조물주는 어째서 이 나무를 유독 한라산 가파른 절벽에 심어놓고, 그 질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까? 제주의 역사가 돌매화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사람보다는 말이 살기에 더 어울리는 곳, 정치범을 가두어 놓기에 알맞은 유배지로만 알려졌던 제주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최근의 변화는 실로 놀랍다. 가히 혁명적이다. 조선시대 뭍으로의 진출이 금지된 변방의 섬에 이제는 2000만명 관광객 유치를 슬로건으로 내걸 만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변화와 성취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문제점들이 곳곳에 속출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등하는 부동산 값에 정신 차릴 겨를도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변화를 선택했을까? 지독한 가난과 설움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선택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지역개발에 따른 부동산값 상승, 그것은 평생 접하지 못할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역개발은 황금 알을 낳는 주민 합의사항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선거때만 되면 후보들은 너나없이 개발비를 따올 수 있는 적임자임을 자처했고, 그들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초가집을 헐고 마을 길을 넓히면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동안, 행정에서는 개발지상주의 광풍이, 도의회에서는 지역구 몫을 챙기는 한국정치의 구태가 판쳐 왔다.
그러나 결과를 냉정히 보아야 할 때다. 우리 후손들이 실향민이 돼 귀속할 곳 없이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미 제주는 20~30년 전의 제주가 아니다. 관광과 도시화로 인한 주민의 물리적 생존조건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고, 청정 바다로만 알던 어장이 오염되고 경관도 원형 복원이 어렵게 파괴되고 있다.
도대체 환경론자까지도 그토록 외쳐대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껍데기만 빌려 온 외래어이자, 개발지상주의자의 그럴듯한 포장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툭하면 떠드는 지속가능한 개발 논리 앞에 제주의 자연환경은 조금씩 제 살을 도려내어 흉물이 되는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제주사회에 불어 닥친 변화와 그로 인한 갈등과 방황, 충격은 냉철한 이성의 관점에서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미래는 감정에 호소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성찰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 마련된 대안이야말로 그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야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정당하게 귀속되는 의무와 권리를 약속대로 이행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
되돌아보면 금년 한 해 국회의원이든 도의원이든, 도지사이든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자신들이 쏟아낸 발전 논리가 정말 제주도가 지향해야 할 기획인지, 아니면 리스크(risk)인지 다신 한번 진지하게 되짚어 보기 바란다.
1960~70년대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고속주행 하던 제주개발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해야 할 책무가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래서 밤새워서라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표를 의식한 검토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제주 개발’이고, ‘누구를 위한 제주개발’ 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하길 바란다.
아마도 지금 도지사·국회의원·도의원들이 20·30대 시절에 술잔을 기울이며 목 터져라 외쳤을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떠올리면서 2015년 한 해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가라. 껍데기는 가라. 안일과 권태로 주어진 소임을 맞바꾸려는 자, 거듭남의 매서운 절정을 이겨내지 못할 자, 모든 껍데기는 가라. 비록 소수만 남을지라도 이 땅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유장한 세월 한라산 정상에 머물러 온 돌매화가 지금 이 순간 갖은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