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와 소방공무원의 아픔
‘람보’와 소방공무원의 아픔
  • 남화영
  • 승인 2015.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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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외상후 스트레스에 노출
국민안전 위한 노력에 격려 당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사회현상을 바라봄에 있어 단순히 피상적인 부분만을 인식하기보다는 좀 더 깊은 지식이 있을 때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에 생각했던 일이나 고정관념들이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주변상황을 투영해 보거나 다른 자극이나 경험에 의해 바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두 번씩은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얼마 전 이와 관련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 TV 채널에서 오래전 개봉했던 ‘람보’라는 영화를 방송하기에 무심코 지켜보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 이 영화를 본 후 줄곧 주인공 람보는 탄약을 몸에 두르고 기관총을 한 손으로 쏘면서 적을 제압하는 천하무적의 전쟁 영웅, 마치 최근 영화들에 나오는 히어로(Hero)물의 원형 같은 이미지로만 생각해 왔다. 실제로 이 영화는 후속편으로 갈수록 최초의 의도에서 비켜나 전쟁영웅의 모습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고착됐으니, 지금까지 이 영화에 대해 가져온 생각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1편의 마지막에 전장에서 경험한 ‘과거’로 인해 고통 받으며 울부짖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었음을 새롭게 깨달았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 자체도 무겁고 진지한 영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 봤을 때 그냥 지나쳐 버렸던 이 장면이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진지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바로 PTSD 위험에 노출돼 있는 소방공무원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소방공무원의 한 사람이자 우리 직원들의 심리문제에 적잖은 고민을 하게 되는 소방본부장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 람보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최근 소방공무원들의 심리적 질환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면서 사회 전반에서 걱정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제는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심리적인 충격을 받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조사 결과 적지 않은 소방공무원들이 일반인 보다 매우 높은 우울, 수면장애, 불안장애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민안전처와 제주특별자치도는 적극적인 개선의지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특히 전 직원이 연 1회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질환이 우려되는 경우에 추가 심리상담은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힐링캠프와 심리안정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참혹한 현장에 노출된 직원은 즉각적으로 심리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소방안전교부세를 활용해 전 출동부서에 심리안정 기구들을 확대 보급, 현장 활동 후 신속한 치유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에 있다.

올 한해도 우리 제주 소방공무원들은 4만9000여 건의 화재와 구조·구급현장에서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필자 또한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의 노고와 헌신에 고마움을 느낀다.

‘무적의 람보’조차도 PTSD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처럼 강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소방공무원 역시 때로는 아파하고 고통 받기도 하는 한 인간임을 잊지 않는다면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도민 여러분들도 그들이 직면한 심리적 문제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소방공무원들의 심리적 문제 해결은 단순히 그들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방이 목표로 하고 있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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