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따라 돈 몰려 실물가격 ‘들썩’
도민들도 투기대열 가세 가수요 폭증
불로소득 크면 분배정의 왜곡 우려
자본투자 과도한 집중 ‘거품’ 형성
17C 네덜란드 ‘튤립 파동’ 교훈 삼아
부동산 폭락사태 대비 대책 세워야
튤립 뿌리 하나 가격이 집 한 채 값과 맞먹는다.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다. 이 나라가 동인도회사를 통해 세계무역을 지배하며 황금시대를 구가할 때다. 돈이 넘쳤다. 때마침 터키에서 들어온 튤립이 인기를 끌었다. 이 꽃이 ‘부(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이 튤립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점차 올랐다. 사재기 등 투기 광풍이 불었다. 선물(先物)거래까지 등장했다. 알뿌리 하나 최고가격이 오늘날 화폐가치로 8만7000유로(약 1억75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턱없이 비싼 가격에 실거래가 끊겼다. 값이 폭락했고, 시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이 파산했다. 1637년에 정점을 찍은 ‘튤립 파동’이다. 이 말은 투기로 조성된 거대한 거품(버블)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가 됐다.
최근 도내에서도 투기 바람이 거세다. 땅과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다. 일각에서는 “집·땅값이 미쳤다”고 한다. 얼마 전 제주시 이도주공 1단지 아파트 공매 결과에 도민사회가 깜짝 놀랐다. 3.3㎡(1평)당 최고 2254만원에 팔린 것. 30년 된 이 아파트 가격은 불과 4년 만에 4배 이상 뛰었다. 재건축을 앞두고 투기성 자금 유입이 의심됐다.
제주 부동산 가격 상승세의 가장 큰 요인은 인구 유입이다. 사람 따라 중국 자본과 육지 부동자금이 제주로 몰리고 있다. 풍부한 자금은 주택 등 가격을 밀어 올린다. 주변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생겼다. 이를 부러워하는 도민들도 부동산 매입 대열에 가세한다. 집 있는 사람들도 집을 산다. 가수요(假需要)가 폭증하고 있다.
제2공항 추진은 불타는 제주 부동산시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투기세력이 활개치기 더 좋은 환경이 됐다. 벌써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제2공항 에어시티 예정지’ 사진이 돌고 있다고 한다. 한탕하려는 작전세력의 농간이다. 제2공항 입지를 대정 등 다른 지역으로 예상하고 땅을 산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제주 전역이 투기장이 되고 있다.
제주 인구 증가는 양면의 칼이다.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정책당국은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부동산 값은 더 오른다.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 자산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의 대물림이 확산된다. 양극화 심화로 사회통합은 멀어진다.
경제성장에 비해 과도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아야 한다. 성장의 열매가 부동산을 가진 소수 계층에 집중되게 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은 결과적으로 남이 만들어낸 부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분배의 정의를 왜곡시킨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취임사에서 “성장과 분배가 겉도는 낡은 경제구조로는 제주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고 밝혔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가 우려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 시점에서 제주의 이익을 가장 저해하는 것은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는 행위다. 하지만 투기자를 마냥 비난할 수 없다. 미래 시장가격을 예측해서 이윤을 얻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연스런 현상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책임은 오히려 당국에 있다. 투기적 환경이 조성될 요인의 예측·관리에 실패했다. 제주도는 인구와 자본 유치에만 급급했지 그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파트 값이 들썩이는데도 대응에 손을 놓고 있었다. 뒤늦게 2020년까지 매년 주택 1만호(민간공급 80~90%) 공급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미지수다. 경제는 심리다. 시장에 보내는 신호가 늦은 감이 있다.
부동산 오름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지만 정점은 분명 있다. 자본 투자가 특정 분야에 집중되면 ‘거품’이 형성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거품이 터지면 심각한 경제 문제가 발생한다. ‘튤립 파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 폭락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막자면 주도면밀한 대책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