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동광마을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하고 있다. 근대 이전 제주목을 왕래하던 사람들의 중간 기착지로써 국영여관인 이왕원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을은 1670년 임(任)씨가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제주 4·3사건 당시에는 6개의 자연부락에 200여호가 거주하던 한적한 중산간 마을이었다.
1947년 여름 보리공출 나온 군청 직원들이 고압적 태도를 보이다 마을 청년들에게 구타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동광마을은 경찰의 주시를 받게 됐고 청년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해 산이나 인근 친척집에 피신해 지내고 있었다.
1948년 11월 15일 새벽 동광마을(속칭 무등이왓)에 들어온 토벌대가 주민들에게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청년들은 이미 도피한 상황이라 마을에 거주하던 노약자들 10여명이 나갔다가 모두 총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주민들은 살기위해 큰넓궤(동굴 지명) 등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숨어 지내던 큰넓궤가 발각되자, 주민들은 살기 위해 한라산 깊은 곳으로 도피했고, 토벌대에 붙잡히는 과정에서 153명이 희생당하게 된다. 주로 유명 관광지인 정방폭포 주변에서 희생됐는데, 대부분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 중 일부는 헛묘(시신이 없이 봉문을 만든 묘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 억울함은 2000년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된 후에야 풀리게 된다. 당시 피해자들은 정부의 심의를 거쳐 4·3희생자로 명예회복됐고, 지난해 3월 24일에는 ‘4·3희생자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4·3희생자를 추모하게 됐다.
동광마을 4·3길에 오시면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아무 이유 없이 희생당한 여러 사람들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동광마을 4·3 길을 시작으로 새로운 4·3 평화의 길, 4·3인권의 길을 추가 개통해 평화의 섬인 제주를 대표하는 국민화합의 길, 세계평화의 길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많은 분들의 안덕 동광마을 4·3길 방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