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는 용암동굴의 보고
자연적인 동굴에는 석회동굴, 해식동굴, 용암동굴이 있다. 석회동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빗물에 의해 석회암의 성분인 탄산칼슘이 녹아서 만들어진다. 석회암은 주로 고생대인 수억년 전에 바다 속에서 퇴적된 산호 껍데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빗물에 잘 녹아내린다. 보통 동굴 내부에 종유석이 만들어져 있어 종유동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척의 환선굴과 단양의 고수동굴 등이 유명하다. 해식동굴은 말 그대로 해안선에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도 해식동굴이 많이 분포한다. 범섬과 갯깍 주상절리에서 볼 수 있으며 마라도에는 해안 절벽을 따라 해식동굴이 발달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반면 용암동굴은 용암류가 흐르면서 빠져나간 통로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분화구로부터 지표로 흘러나온 용암류는 지형 경사를 따라 하류로 흐른다. 이렇게 흐르다 멈춘 용암은 표면이 먼저 굳어지고 그 아래를 흐르던 용암이 빠져나가면서 지하 통로가 만들어진다. 이 지하 통로는 용암을 흘려보내는 튜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동굴 속으로 계속하여 후차적인 용암류가 흘러들어 온다. 뜨거운 용암은 동굴의 바닥을 깎아내며 동굴의 크기를 넓히거나 2층 굴을 만들기도 하고 천장에 달라붙어 다양한 동굴내부의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용암동굴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도 북동부에 위치한 만장굴은 화산활동에 의해 땅속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현무암질 용암이 지표를 흘러가면서 형성된 용암동굴이다. 이러한 용암동굴은 제주도 곳곳에 160여개나 발견되었다. 더욱이 제주도를 형성한 무수한 화산활동과 그에 따른 용암 흐름을 고려한다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동굴들이 지하에 무수히 많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2007년 제주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준비하던 당시 만장굴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전봇대를 세우기 위한 포크레인 공사 중에 땅이 푹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새롭게 발견된 동굴이 용천굴이다. 만장굴을 비롯하여 김녕사굴, 표선굴, 빌레못굴, 미천굴, 한림공원의 황금굴과 쌍용굴, 소천굴 모두 용암동굴이다.
특히 용천굴이나 당처물굴과 같이 동굴 내부에 이차적으로 종유석과 같은 아름다운 이차생성물을 만든 동굴도 실은 모두 용암동굴에 속한다. 이런 동굴을 위종유동(僞鐘乳洞)이라고 부른다. 과거 제주도 도처에 분포되어 있는 용암동굴들은 지역별 동굴군으로 나눴었다. 그러나 최근 용암동굴에 대한 학술 연구가 확대되면서 공간적 시기적으로 서로 관련된 용암동굴이 하나 혹은 하나 이상 서로 연관된 화구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에 의해 형성되어 용암동굴계(lava tube system)를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용암동굴계가 만장굴을 포함하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이다. 만장굴은 1960년대부터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관광객들에게 사랑 받아왔으며, 그 가치에 힘입어 2007년 7월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이라는 명칭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명소이다.

용암동굴의 형성과정
용암동굴의 형성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그 형성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던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 지역에서 활발히 수행되었다. 특히 하와이의 마우나울루(1969~1974년)나 킬라우에아의 푸오오-쿠파이아나하(1983~현재) 화구에서 형성된 용암류와 용암동굴에 관한 장기적 관찰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구는 용암동굴 형성에 관한 이해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 용암동굴의 형성메커니즘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들에 따르면 용암동굴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간략히 요약하면 용암동굴은 1) 좁고 경사가 급한 지형을 흐르던 용암의 표면이 굳어 동굴천장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되거나, 2) 평탄한 지형에 넓게 퍼져 판상으로 흐르던 용암표면이 굳고 서서히 부풀어 오르면서 그 아래로 용암이 흘러 만들어질 수 있다. 지표로 흘러나오는 현무암질 용암의 온도는 대략 1150~1160도 정도이다. 이러한 용암이 용암튜브를 통해서 흘러갈 때에는 열이 잘 보존되어 높은 온도를 그대로 유지한다. 현무암이 부분적으로 녹는 온도는 대략 980~1010℃로 용암동굴 내부를 오랜 시간에 걸쳐 흘러가는 뜨거운 용암은 동굴의 바닥과 벽면을 녹여 다양한 형태의 동굴모양을 만든다. 용암동굴은 계속적인 화산활동으로 동굴 내부에 용암이 쌓이기도 하지만, 용암동굴 내부를 흘러가는 고온의 용암은 용암튜브 바닥이나 벽면을 녹여 아래로 길쭉한 형태인 모래시계 모양의 2층 굴을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용암동굴은 섬의 동부와 서부 중산간 지대에 주로 분포한다. 용암이 용암동굴을 통해 1km를 흘러갈 때에는 0.6~1℃ 정도 온도가 내려가지만, 지붕이 없는 용암천(lava channel)을 흘러갈 때에는 5~7℃ 정도 온도가 내려간다. 이러한 이유로 용암은 용암동굴을 통해 더 멀리 흘러갈 수 있다. 용암동굴의 분포와 지형과의 관계를 보았을 때, 용암동굴이 제주의 동쪽과 서쪽의 완만한 지형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오름의 분화구와 같은 동일시기에 흘러나온 용암의 흐름 내에 선상으로 분포하는 용암동굴의 망을 용암동굴계라고 한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lava flows) 내에 분포하는 여러 용암동굴과 그와 관계된 특징적인 구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용암동굴계는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로 연결되는 규모가 크고 다층구조를 보이는 주간 동굴선(master tube line)과 벵뒤굴로 대표되는 복합 동굴망(complex anastomosing system), 그리고 김녕빌레못굴~게웃샘굴로 연결되는 단일 동굴선(unitary tube line)으로 구성된다. 뿐만 아니라 거문오름 분석구와 가장 상류의 웃산전굴 사이에는 용암동굴의 붕괴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붕괴도랑(collapse trench)이 약 2km에 걸쳐 관찰된다. 이 붕괴도랑 구조는 용암 공급지인 거문오름 분석구와 주간 동굴선이 직접적으로 연결됨을 지시하는 증거가 된다.
용암동굴을 형성하는 과정이 잘 관찰된 하와이 푸오오 화산의 경우, 화구 가까운 곳에 형성된 용암동굴은 4.5년 동안 용암동굴을 통해 용암이 흘러갔으며, 화구에서 멀어지면서 1.5년, 더 먼 곳에서는 0.5년 동안 용암이 흘러가는 것이 관찰되었다. 즉 용암동굴계의 상류에서는 하나의 용암동굴을 통해 용암이 오랜 시간 동안 흘러가지만, 하류로 가면서 여러 갈래의 용암동굴로 나눠지면서 용암동굴 내로 용암이 흘러가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지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원인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용암동굴계에서 상류지역의 용암동굴이 하류지역의 용암동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용암동굴이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류로 갈수록 큰 물줄기를 이루는 하천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