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우리 몸을 망하게 할지도
‘항생제’ 우리 몸을 망하게 할지도
  • 김재호
  • 승인 2015.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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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안 유익한 세균 죽이는 폭탄
우리 몸 또 하나의 생태계
100조 마리 미생물 터잡고 살아

대한민국 항생제 공화국
체내 생태계 파괴 불균형 초래
조금 지저분함이 이로울 수도

설거지를 할 때마다 아내랑 실랑이를 벌인다. 세제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아내가 못마땅해 아예 설거지는 내가 담당한다. 아내는 세제를 사용치 않고 물로만 하는 설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늘 투덜거린다. 세탁기로 빨래를 할 때도 세제를 넣지 않고 돌리는데 아내는 까맣게 모른다.

많은 이들은 설거지할 때 ‘필수품처럼’ 사용하는 세제가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고 지구를 앓게 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내는 물 마신 컵을 씻을 때도 어김없이 습관적으로 세제를 사용한다.세제는 수십 종의 합성화학물질과 계면활성제를 함유한 ‘독성물질’이다. 식기에 묻은 계면활성제는 물에 잘 씻기지 않아 음식을 먹을 때 그대로 섭취된다.

수의사 경험상 송아지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병은 설사다. 설사의 원인은 어미소의 젖 생산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혹은 젖의 지방 함량이 높아 송아지가 소화시킬 수 없을 때 생기는, 몸을 살리기 위한 자연스런 현상이다.이렇듯 설사의 원인이 세균과는 무관함에도 가축주들은 송아지 설사 치료에 항생제를 쏟아 붓는다. 이렇게 항생제 폭탄을 맞은 송아지들은 몸 안의 이로운 세균들을 말살당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송아지 설사에 무심코 사용하는 항생제의 무서움을 가축주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 몸의 세포가 10조 개인데 그보다 10배나 많은 100조 마리의 각종 박테리아·바이러스·곰팡이 따위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터 잡고 살면서 몸 건강을 지킨다.

항생제는 몸 안의 유익한 세균을 죽이는 폭탄이다. 대한민국은 감기 환자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항생제 공화국이다.미국국립보건원(NIH)이 세계 80개 연구소의 연구자 200명을 동원해 5년 동안 밝힌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배설물이 모이는 대장으로 무려 4000종의 세균이 살고 있다. 이어 음식물을 씹는 이에 1300종, 코 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피부에 800종, 여성의 질에서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입속에만 적어도 5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인체는 수많은 미생물이 사는 생태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치 숲이 서로 다른 생물종으로 구성된 작은 생태계가 모자이크처럼 모여 이뤄지듯이 인체도 서로 다른 미생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한 조각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다.

제왕 절개 출산이 아닌 자연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엄마의 산도에서 세균의 ‘세례’를 받은 덕분에 비로소 모유를 소화할 준비를 갖추고 질병을 이기는 면역력을 얻게 된다. 토끼의 똥 속에는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용한 세균이 잔뜩 들어 있어 어미 토끼는 이것을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소화기능을 전달한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세균을 퇴치의 대상으로 삼던 이제까지의 의학자들과 달리 인체 미생물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몸속에는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과 유익한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

무차별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방식은 자칫 이런 균형을 깨고 수많은 유익한 기능을 하는 ‘좋은 미생물’까지 모조리 없앨지 모른다. 미생물과의 공존을 막는 대표적인 생활방식은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깨끗한 생활방식을 고집해 미생물과의 접촉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다. 어릴 때 흙이나 먼지처럼 미생물이 많은 지저분한 곳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않아 나중에 알레르기나 당뇨 등에 잘 걸린다는 전문의들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입속의 세균을 깡그리 없애준다는 구강청정제를 쏟아 붓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수천 종류의 미생물 수억 마리가 살고 있는 몸 생태계를 내가 망가뜨리는 건 아닌가.

우리 몸은 나 자신과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커다란 또 하나의 유기체다. 너무 깔끔 떨지 말고 조금은 지저분하게 사는 게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항생제와 세제가 우리 몸과 지구를 망하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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