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가 상임위별로 4조1028억 원의 내년 제주도 예산 심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말 사상 초유의 예산파동을 경험한 도민들은 올해도 그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러한 도민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징후가 벌써부터 나타났다.
구성지 도의회 의장은 지난 16일 본회의 개회사에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지역예산 확보는 곧 능력으로 직결 된다. 도민을 대변해야 할 의회의 입장에서는 예산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대규모 증액-삭감을 예고했다.
이에 대한 원희룡 지사의 반응도 심상치가 않다. 원 지사는 지난 19일 도정 질문 답변을 통해 “의회의 일방적인 증액에는 맞대응 하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예산안 심사를 놓고 맞서 있는 제주도와 의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배울 필요가 있다. 오로지 도민을 위해 혈세를 어떻게 써야할지를 고민하며 예산을 편성하고 심사하는 길이 대도(大道)요 그 길에는 문이 없다. 지금 국가장(國家葬)을 치르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을 정치철학과 신념으로 삼았기에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되찾았고 역사적 죄인들을 단죄했으며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를 실시 할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행렬이 전국에 이어지는 이유다.
제주도의 예산편성과 심사도 대도(大道)로 가야 한다. 거기에는 문이 없으며, 그러므로 막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산심사를 둘러싸고 도민 이익을 외면한 채 집행부-의회 할 것 없이 지역구 챙기기, 의원사업비 확보, 선심성-전시성 예산 숨기기 등으로 티격태격한다면 그것은 소도(小道)요, 문이 많으며 따라서 막힘도 많다. 지난해 말 예산파동도 ‘대도(大道)’로 가지 못하고 소도(小道)를 걸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