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 딸과 파리 5박6일
충전 넘어 꿈을 찾은 시간
개성 가득한 예술의 도시
아픔까지도 보존하며 자원화
‘제주’ 인공의 땅덩어리로 변모
지금 숙제는 ‘있는 그대로 두기’
딸 덕에 정말 오랜만에 호강했다. 지난 추석연휴는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 시댁식구들한테도 “다녀오겠다”고 알리고 감행한 시간이었지만 고맙게도 어른들은 갔다 오라면서 시원하게 배려해주셨기에 눈 딱 감고 딸이랑 파리여행을 다녀왔다. 5박6일, 나한테는 평생 제일 긴 여행이었다.
일을 잠시 내려놓고 떠난다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온전히 떠나고 싶었다. 하루하루 버겁게 사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 아등바등 사느라, 아이들 키우느라, 돈 버느라, 연극하느라 긴 여행은 꿈도 못 꿨었는데, 아니 여행경비가 맘에 걸려서 마음은 있어도 감행하지 못했었는데, 나한테 5박 6일은 충전의 기쁨, 아니 새로운 꿈을 찾는 여행이 됐다.
체 게바라의 말처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본다지 않은가. 마크 트웨인은 선입견, 편협함, 우물 안 개구리 근성을 없애는 데는 여행이 최고라고 했다. 특히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는 문화예술인으로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해오고 있던 터였으니 갔다 오면 무언가 다 좋아질 것 같다는 희망까지 생겼다.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이라고 별로 다녀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지난해 다녀온 프라하행과 이번 파리여행은 특별했다. 아니 오롯이 딸과 둘만의 여행이라 색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파리 그러면 왠지 예술적인 건축물과 예술적인 그림들, 예술적인 노래, 그리고 예술적인 거리, 예술적인 하늘과 땅, 심지어 대기마저 예술적인 공기로 가득 할 것만 같았다. 그런 기대 때문인지 내 눈에 비친 파리는 확실히 예술의 도시였다.
어딜 가나 예술적인 개개인이 저마다의 패션 감각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한여름의 날씨지만, 누군가는 두툼한 스웨터에 스카프를 두르고, 누군가는 해변에서나 봄직한 스타일, 또 다른 누군가는 정말이지 모델 같은 포스를 풍기며 저마다의 개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어느 누구하나 그런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는 이가 없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더욱 눈에 띈 건 곳곳에 낙서처럼 그려진 페인팅 그림들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나 공원의 탑 기둥 등에, 아주 오래 전에 그린 그림들이 지워지거나 새로 페인팅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역사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세대가 바뀌고 감추고 싶은 사건이라 해도, 지금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후대에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아닐까 싶었다.
딸이랑 둘이서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몽셀미셀 단체 관광에 나섰다. 말로만 듣고 인터넷에서만 구경했던 몽셀미셀에 드디어 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가이드가 예술의 도시, 연인들의 도시, 해적의 도시라면서 옹플뢰르도 들른다고 했다.
큰 기대 없이 들른 곳,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더니 쉽게 그 곳을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언제 내가 다시 오겠나 싶다가도 우리 아이들, 우리 남편도 함께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 아픔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아주 좁은 골목길이라도 그대로, 폭격을 맞았던 자리도 그대로, 그것이 돈이 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진 세월의 흔적, 그것이 국내외 사람들을 모으고,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우리 제주가 안타까웠다. 개발의 논리로 자꾸만 제주의 원래의 모습, 제주다움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아무리 개발이 살기에 편하고 일시적으로 돈이 된다고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살기 힘든 곳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거리가, 땅덩어리가 변모하고 있지 않은가.
어딜 가나 비슷하게 지어진 똑같은 현대식 건물, 인공적인 가공물로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니 어림없는 일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천혜의 자원을 가진 우리 제주로서는 더 늦기 전에, 더 훼손되기 전에 찾아야 할 숙제가 ‘있는 그대로 두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