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도의회는 올해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과정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당시 집행부가 의원증액 예산이 선심성 등으로 흐르고 있다며 불가(不可) 원칙을 고수, ‘부동의’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희룡 지사와 집행부 ‘고집’으로 의회증액 예산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도지사가 의회의 반발을 무릅쓰며 부동의 했던 일부 사업 예산들이 ‘재배정’ 등을 통해 편법(便法)으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마치 ‘눈 가리고 아웅’식의 예산 집행이었다.
이 같은 예산은 한 둘이 아니었다. 부동의 사유였던 제주시 일도2동의 ‘고마로 축제’ 예산 1500만원은 관광진흥과 지역축제 활성화 예산을 재배정 받아 집행됐다.
서귀포시 표선면 ‘생활체육회장기 체육대회(500만원)’와 ‘체육회장기 축구대회(500만원)’는 ‘생활체육회 오름등반대회’ 등으로 둔갑(遁甲)되어 살아났다. 자치행정과 예산으로 금액도 똑 같았다. 또 남원읍 한가위축제의 경우 ‘부동의 예산 미집행’으로 표기하고 대신 경상비로 24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시 관계자들은 주민 요청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침체된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에서 배정한 지역축제 활성화 예산을 재배정한 것이란 변명(辨明)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구한 변명은 또 다른 논란을 부를 뿐이다.
이로 인해 원희룡 지사의 입장만 난처하게 됐다. 당장 도의회에선 이런 게 지사가 말하는 ‘예산 개혁’이냐며, 이는 결국 의원증액 예산이 정당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죽 난감하면 원 지사가 업무지침 위반 행위에 대한 진상(眞相)조사에 착수할 뜻까지 내비쳤겠는가.
행정은 주민들의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제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도의회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산 개혁’ 운운하는 한편으로 도지사가 부동의한 예산을 편법으로 집행한 것은 사업 및 액수의 과다에 관계없이 아주 잘못된 행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의 뜻을 관계 공무원들이 잘 헤아려 업무에 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