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하면 큰 罰 교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출현’
국정화 추진 주체들의 말바꾸기
당초 공언했던 ‘투명성’ 흔들
집필진 공개는 대국민 약속
‘강요된’ 최악 막기 위한 차악 방안
이솝 우화 ‘양치기소년과 늑대’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로 마을사람들을 놀리다 제대로 사고 친 얘기다. 소년은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전부’인 양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진짜 늑대다!”라는 소년의 절박한 외침을 마을사람들은 “거짓말”하며 ‘개무시’해 버린 것이다.
2000년 전 이야기다. 그동안 “거짓말은 나쁜 짓”,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아주 큰 벌을 받는다”는 교훈의 바이블처럼 전래돼 왔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양치기 소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일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진 공개 모집이 끝났다. 그런데 정부는 몇 명이 지원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 연유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국정화 동의여부를 떠나 집필진을 공개해야 한다.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투명 추진’이라던 정부의 약속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화를 되돌릴 수 없다면 정말 정부의 공언대로 ‘올바른’ 국정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인지 검증은 필요하다. 차악이라도 선택, 최악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정화 반대의 목소리를 ‘투명성’으로 대처해온 형국이다. 그런데 그 투명성이 흐려지고 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달 “가장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이 ‘아, 이러이러한 분이 이러한 절차에 따라서 집필에 참여하시게 되었구나’ 하는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스스로 강조했다. 또한 정부측 책임자인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지난 3일 “집필부터 발행까지 교과서 개발 전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말이 달라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개인적으론 (공개)하고 싶지만 집필진이 ‘안되겠다’고 하면 따라야 된다. 심사숙고 하겠다”고 밝혔다.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도 ‘수상’하다. ‘투명성’을 공언해온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35~36명 정도를 모셔 집필에 착수할 것”이라며 “5~6명의 대표 집필진은 공개하겠다”고 발언, ‘투명 운영’에 의심을 자초한 바 있다.
“국가가 책임을 지고 좋은 교과서를 잘 만들겠다. 한번 정부를 믿어달라”고 한 황 부총리의 국회 발언도 마음에 걸린다. 믿어달라는 얘기는 묻지 말아달라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역시 집필진을 공개 않고 진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의문이다. 보여준 게 뭐 있다고 믿어달라고 하는 것인지. 세월호 사건때 “최후의 한사람까지 구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최초의 단1명도 구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다. 황 부총리나 김 위원장도 불과 한달 전 국민에게 공언했던 ‘투명성’ 약속도 지키지 않으려 말이 오락가락 하는 모양새다.
투명성 논란이 일자 국편과 교육부는 자료를 내고 “집필진 공개 원칙은 변함 없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신뢰를 잃고 있다. ‘국가의 기틀을 바로 세울’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의 두 주역이 그야말로 현대판 양치기가 되고 있다.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으면 대국민 거짓말이다. 양치기소년은 마을사람 몇을 속였지만 황 부총리와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속이는 셈이다. 안그래도 의심받는 국정교과서의 ‘진정성’마저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애초에 공개원칙을 밝힌 만큼 공모에 응한 사람은 공개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도 된다. 설령 동의하지 않으면, 그렇게 떳떳할 수 없으면 집필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학생들도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데 일국(一國)의 역사를 ‘정부의 주장대로’ 올바르게 쓰겠다는 학자들이 익명으로 책 속에 숨는 것은 비겁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억지로 만들어진 교과서라 할지라로, 우리 애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그리고 황 장관의 말처럼 35~36명 가운데 대표 5~6명만 공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한의사’가 좋은 한약을 만들었다며 들어간 약초 35가지 가운데 5가지만 알려주면서 권할 때 흔쾌히 받아먹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생각하면 그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