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중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 가장 친한 느낌을 가지며 살까? 아마 한국인들만큼 중국인들이 가깝게 지낼 나라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정치와 체제와는 별도의 차원이라도 한국은 실제 중국인들이 가깝고 싶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지를 지나 멀리 가야 하는 접경 국가보다 항공으로 이동하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외국이 한국이다. 문화적으로도 받아들이고 싶은 특유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에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본이나 이제는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눈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폐쇄된 북한과는 완전히 다르게 닮고 싶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다.
작은 나라지만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도 썩 잘 만들어 내며 생활의 수준을 높여 주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향후 가장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외국인이다.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양국 간 다방면에서의 교류를 우호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한 여러 경로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단연 한류(韓流)이고 한류 스타들이다. 오래 전 선조들의 시대와 다르게 한국의 문화를 중국인들이 공유하게 하는 한편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경제 활동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한류는 큰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일 수교가 우리보다 20년 빠른 1972년 임에도 지금의 양국 관계를 생각해보면 한·중은 한류 덕에 단 기간에 ‘절친 이웃’이 된 셈이다. 잘 모르던 두 나라 사람들이 만나 역사 문제며 경제 수준 차이에다가 많이 달라져 있는 문화 차이와 한반도 정세까지 얽혀 복잡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그런 것들을 뛰어 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한류이다.
한류는 중국 어디에서도 느껴진다. 도심 어디 매장에서도 K-POP이 흘러나오고 TV 어느 채널에서도 쉽게 한국 드라마 속의 여러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옷 가게며 패스트푸드점과 백화점·할인매장·대형마트도 모두 다니다 보면 “여기가 어디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한류는 중국과 관련된 통상이며 여행, 문화 교류 등 많은 것들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비즈니스에도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 정말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이 보는 한국 드라마 속의 한류 스타들이 쓰고 타고 입고 바르고 먹고 하는 모든 것들이 중국 시장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되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곧 소비자가 되는 경우는 많다. 한국 제품과 관련된 인터넷 쇼핑몰을 들여다보면 ‘한국’이라는 두 글자가 어느 새 신뢰와 세련을 더해 주는 강조어가 됐으며 거리 곳곳에는 한국 제품임에 잔뜩 힘을 준 간판의 의류매장들도 많이 생겨났다.
한류의 대단함은 중국인들이 그냥 보고 듣고 모방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것들에 호감을 가지고 소유하려고 하는 중국인들의 소비 행위는 매우 적극적이다.
중국인들은 반복적으로 시청하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소품들은 중국인들을 소비자로 만나기도 한다. 몇 시간 전의 한국 드라마가 더빙까지 마치고 곧 바로 인터넷으로 전파되는 세상이다. 드라마 속 연기자 소품들은 의상이며 화장품에 액세서리까지 바로 쇼핑으로 연결된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도 관찰하게 된다. 대부분 ‘몸짱’인 선남선녀들이 땀 흘리는 헬스장 전경이나 잘 조경된 하천 길을 걷고 뛰는 중년들의 모습들도 많이 등장하고 알록달록한 등산 차림의 노년들도 많이 보게 된다. 한류는 중국인들에게 웰빙 문화까지도 잘 전달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정말 흐뭇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한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하나의 한류가 되기 훨씬 전 중국 현지에서 한국을 홍보하는 업무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시작부터 부딪치게 된 문제는 과연 중국인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 인가였다.
양국은 유사점이 많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 솔직히 경복궁 같은 왕궁도 크게 자랑하기는 어렵고 중국이 가진 넓은 대륙에 갖가지 자연도 많으니 한국과는 저절로 비교가 됐고 좌면우고 결국 오로지 인위적인 것을 알리는 데서 출발하기로 한다.
우선적으로는 쇼핑을 하기 좋은 나라임을 강조했고 여기에 더해 화장과 미용 등을 꺼내어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임을 소구하기도 했고 눈이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 사람들에게는 강원도의 스키장을 자랑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당시 중국에서 인기를 가지기 시작했던 한류 스타들이 모델이 됐었다.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거나 이미지를 보다 더 긍정적으로 갖게 하는데 한류가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류에게 훈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 중국 내 한류의 절정을 보여주는 한 가지가 있다. 한국 안방에 등장하는 온갖 예능 프로그램들이 예외 없이 모두 중국 버전으로 만들어져 방영된다는 현상이다. 중국 방송국에서 ‘짝퉁’ 중국산으로 만들어낸 모방품이 아니라 한국 방송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수입하고 한국 제작진들의 현지 출장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것들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중국인들이 이와 같은 정서를 가진 프로그램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에 대한 놀라움도 한편 있다. 한국은 사실 지금과 같이 사회적으로 공감이 되는 정서를 담아 그려내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프로그램들이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인들은 이루어낸 것들에 대한 강한 흡수력과 소화력, 그리고 그것에 자신들의 창의를 더해가면서 빨리 가는 것들에는 정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정말 한풍이 생길지 모른다. 한류에 대칭하여 중국인들이 쓰는 단어가 바로 “한풍(漢風)”이다. 한류(韓流)든 한풍(漢風)이든 한류(寒流)가 흐르지 않고 상생이 오래 가면 또 좋을 일이다. <끝>
‘한류(韓流)’ 중국 언론이 한국 바둑에 처음 사용
본격적 원조는 1990년대 방영 가족드라마
‘2.0’ 넘어 한류 제품 대량 팔리는 3.0시대
한류(韓流)라는 단어는 중국어 단어인 한류(寒流·온도가 낮은 해류)에 같은 발음인 ‘韓’을 대입시켜 중국 언론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단어가 중국에서 처음 쓰인 곳은 바둑이다. 한 때 한국 기사들이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이어갔던 기세를 표현하여 처음 사용됐다가 후에 드라마나 노래 등으로 넓어지며 양국에서의 상용 단어가 됐다. 좁은 의미에서는 드라마나 노래·영화 등을 의미하지만 광의에서는 비빔밥에 화장품·의류에다가 밥통이며 중국에서 유행하는 한국 기업의 제품들까지 통칭하는 것이라고 중국인들은 한류의 정의를 내린다.
본격적 한류의 원조는 1990년대 방영된 가족 드라마라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인들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한국 가정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아주 높은 시청률을 보였고 그 후로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죽 이어진다. 드라마들과 연관된 연기자들은 노래와 연기로 중국인들과 친해졌다. 최근에는 한국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이 중국 현지 판으로 수출되어 만들어지고 있고 한국 연기자들이 속속 중국에 진출하는 등 한류는 갖가지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열심히 공부한 중국어를 뽐내며 고액의 개런티를 받고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한국 연기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그들의 안방에 초대하는 한류 스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3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한류는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한 듯하다.
드라마가 유행한 1990년대는 한류 버전 ‘1.0시대’다. 음악과 영화가 가세해 많은 연예인들이 활약하기 시작한 2000년대는 ‘2.0시대’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생성된 ‘1.0’의 한류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많은 연예인들이 방문과 공연을 통해 중국 시장을 갈고 닦은 시기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이 대폭 늘어나며 각종 한류 제품들이 대량으로 팔려 나가는 ‘3.0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후 또 무엇이 합쳐진 어떤 새로운 버전의 한류 시대가 펼쳐질지 모른다. 20여년간 베이징에서 지켜 본 한류는 경이로움이고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든든한 지원군을 가진 마음으로 살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