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말기부터 제주에 말 서식 ‘추정’
구석기 말기부터 제주에 말 서식 ‘추정’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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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렬왕때 마목장 관리ㆍ감독위해 동ㆍ서아막 설치

탐라국 왕세기편에 제주마와 토산품을 중국, 일본과 교역하였고 백제, 후백제, 고려에 제주마를 조공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탐라국이전부터 제주마가 가축화된 것으로 생각이 된다. 고려 충렬왕 2년(1276) 몽골마 160필과 목양기술에 뛰어난 전문가인 목호(牧胡)들이 탐라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원나라의 14개 목장 중 하나로 탐라 목장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발 200m~600m지대를 10개의 목구(牧區)로 나누어 10소장과 산마장 및 우도장, 가파도에 별목장를 설치하여 조정이 군마(軍馬), 어승마, 가교마, 역마, 파발마 등을 제주도목장에서 매년 공마로 충당하였으며, 일본강점기에는 마을공동목장(114)과 개인목장이 개설되어 제주마와 한우를 사육하였다.
광복이후 국립목장(조선시대의 1소장지대:현 송당목장), 이시돌목장(6소장), 제동목장(녹산장) 등과 마을공동목장에는 외국에서 개량마와 여러 품종의 소가 도입되면서 제주마와 제주한우는 잡종화되어갔다.

1967년부터 중산간지대(마을공동목장)를 국내 최대 초지지대로 조성되면서 국내 대기업목장과 전업 육우목장이 개설되어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이시돌목장은 호주에서 헤리포드종(Hereford) 1,908두, 제동목장은 미국에서 에버딘앵거스종(Aberdeen Angus), 샤로레이(Charolais), 성읍목장(10소장)은 뉴질랜드에서 헤리포드(Hereford), 산타거트루디스(Santo Gertrudis), 시멘탈(Simmental) 등과 남영목장(산마장과 10소장)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쇼톤(Shothorn), 머리그레이(Murrry Grey) 등이 선편이나 항공편으로 수입되었다.

외국산 육우의 도입사육에 있어서 제주도 방목지에 많이 서식하는 진드기에 의한매개질병인 Theileriosis, Babesiosis와 고사리 섭식에 따른 고사리중독증(재생불능성빈혈) 및 IBR(전염성비기관지염) 등이 집단적으로 발생하면서 외국산 동물수입에 따른 사양관리와 질병예방관리에 많은 문제점 등이 나타났다.
1990년 제주경마공원에서 제주마경주가 실시되면서 사육필수가 증가되었으나 개량마와 잡종화되어 제주산마로 경주를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고유품종인 제주마 진흥을 위해 2001년부터 제주마혈통을 등록하고 있으며 제주마 망아지 생산기지를 애월읍 장전공동목장에 개설하였으며 제주도축산진흥원과 제주마생산협회에서는 제주마 생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종부소를 개설 운영하고 있어 우수한 경주 능력이 있는 씨수마를 선택하여 계획적으로 교배시킨다면 제주경마공원에서 스피드와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천경마공원에서 국산마경주 75% 계획에 따른 개량종(Thoroug hbred)말은 넓은목장(성읍목장:10소장), 송당목장, 이시돌목장 및 개인목장 83개소에서 2500여필이 현재 사육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 한우와 육우산업 및 제주마는 방목을 위주로 사육한 신선하고 육질이 좋은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육성기에 거세하고 도태가축을 제한방목과 단기 비육하여 제주브랜드육인 HACCP 청정 Slow-food로 시중에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탐라국의 목마장 시원

제주도에서 말이 서식한 시기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 발견된 사람과 말발자국은 문화재청(2005.6.1)이 발자국 형성시기를 15000~65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곽지패총, 한들굴 등에서 말의 뼈 발굴과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는 洲胡(제주)에 소와 돼지만 있었다고 기록되었고,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에는 소와 말이 함께 목양된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삼성신화에서 나오는 삼신인 중 제일 어른인 고을나왕은 기원전 2337년에 탐라국을 세웠다.
탐라국 왕세기(耽羅國王世紀)에 의하면 서기 145년 탐라국 성방왕(聖邦王, 신라 일성왕 12년, 고구려 태조 대왕 93년, 백제 개류왕 18년)때에 중국, 일본 등지와 물화(物貨)가 상통되어 탐라국의 조공선 및 상선이 토산품인 귤, 감, 탱자…, 물소, 방성의 정기를 타고난 양마(良馬), 각성의 영을 타고난 녹리총 등을 교역하였고, 백제 무왕 10년(610년)에 탐라에서 준마(駿馬)를 백제에 바치자 백제에서는 이 말을 당나라에 바치니 당왕은 과하마라고 이름 지었다(本國獻馬干百濟 因獻唐曰果下馬).

그리고 후백제 27년(918년)에 탐라는 공마를 오월(吳越)에 바치고 중대부(中大夫)의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 등이 있다. 더욱이 고려사지리지 탐라현조편의 탐라국 개국신화(고·양·부을나)에 벽랑국에서 온 3명의 공주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씨앗이 옥함에 들어 있었다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말이 제주에 서식한 시기는 구석기시대 말기로 추정하고 있다.
탐라국 초기부터 말을 사육하여 좋은 말(駿馬)은 조공과 교역을 하고 마육 또는 마유를 식량자원으로 자급자족할 정도였다고 생각이 된다.

고려시대의 탐라목마장 

고려 현종 16년(1025)에 목감양마법(牧監養馬法), 문종 25년(1071)에 도거(섬에 설치한 목장) 관리를 제정한 후 문종 27년(1073)부터는 계속 탐라국에서 예물로 말이 진상되어 문·무관에게 하사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탐라국의 명마(名馬)가 공마로 명성을 얻게 되어 고려 원종 14년(1273)에 삼별초군을 여몽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성 일대에서 평정한 후 이곳에 일본·남송 경략의 군마(軍馬) 공급지로 만들고자 몽고군이 주군하게 되었다.

충렬왕 2년(1276)에 몽골에서 말 160필과 마 전문가들인 목호(牧胡:Harachi)들이 탐라국에 들어와 현재의 남제주군 성산읍 수산리(水山坪) 일대(대왕산과 수산봉)에 몽고식 마목장인 탐라목장을 건설한 것이 제주도목장의 기원이 된다.
고려 충렬왕14년(1300) 공녀(貢女)출신인 기황후(奇皇后)가 친정을 위해 제주도에 궁중에서 기르던 몽골마를 이곳에 방목하면서 왕(王)자 낙인을 하여 순수혈통을 지켜 씨수마는 값을 비싸게 불렀으며 교배에만도 조와 수수를 몇 섬씩을 받는 수탈을 했다고 한다.

충렬왕 3년(1277)에 마목장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동·서아막(東·西阿幕 : Aimaq:牧區)을 설치하였는데, 동아막은 수산평에 설치되어 동부지역(동도, 정의)을 관장케하고 서아막은 한경면 고산리에 합자적(哈刺赤, Harachi)이 축성(築城)했다는 성(城)으로 일곱   르(七田洞), 앞 맨처남, 허문밭을 중심으로 한 지역(조선시대의 모동장이기원)에 설치되어 서부지역(서도, 대정)을 관리하였다. 동·서아막 설치는 몽골식 목장으로 경사가 완만한 탐라국의 초지지형·초지조건 등의 자연환경을 이용할 계획적인 건설이며 목장지역은 목호들이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제주목(濟州牧)을 중심으로 동·서도현(東·西道縣)을 설치하는 기초가 되었다.

원(元:몽골)은 처음에는 말(馬)만 보내왔으나 소(牛), 낙타(駱), 나귀(驪), 양(羊), 개(狗), 고라니, 매(海東靑) 등도 계속 보내 기르게 하였는데, 목장관리만은 충렬왕 2년(1276)부터 공민왕 19년(1376)까지 약 100여 년 간 그들의 마정조직에 의해 운영하였다.

제주도 목장조직
 
①고려초기 목장조직
중앙-병부-사복시·전목사-제주도 목장-목감직-노자(목자)
②원지배시 목장 조직
다루가치(達魯花赤·최상위 계급)
동아막(東阿幕:성산읍 수산리)-목장-애마자장관-제령- 목자
서아막(西阿幕:한경면 고산리)-목장-애마자장관-제령-목자(하라치+토착인)

고려 말기 제주목장은 원(몽골제국)의 14개 목장중 하나로 간주될 만큼 그 규모가 점차적으로 커져 한라산을 중심으로 8개 목장이 되었는데 이것은 조선 초기 목장조직의 기초가 되어 10소장이 설치되었다.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생명자원과
(제주마문화연구소장·제주도문화재위원·제주마주협회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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