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
  • 윤승빈 기자
  • 승인 2015.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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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쁨’ 취미 세계<14>연극
▲ 팀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자네는 뭐야”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마주 서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쭈뼛대다 “장관님 저는 재채기한 걸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처음 남자가 화를 낸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약 다시 한 번 얼씬거렸다가는 진짜로 유배를 보내버리겠어!”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홉의 원작소설을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이 각색한 연극 ‘굿닥터’의 일부다.

굿닥터는 재채기, 치과의사, 의지할 곳 없는 신세, 늦은 행복 등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omnibus)식으로 구성한 연극이다.

설문대여성문화센터(소장 양술생) 내 취미 연극 팀 ‘연인(팀장 변종수·극단 다솜 대표)’이 최근 한창 연습하고 있는 연극이기도 하다.

팀원들은 이날 굿닥터의 1막 ‘재채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재채기는 출세에 야망을 갖고 있는 말단 공무원 이반 일리치 체르디아코프가 ‘연극’을 구경하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부서 장관 을 마주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날 박준희(45·여)씨가 주인공 이반 역을 맡았다. 박씨는 씩씩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각하!”라고 연극의 시작을 알렸다.

장관역은 장상은(58)씨. 박씨 앞 좌석에 앉은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박씨를 바라보며 “누구지?”라고 말을 이었다.

박씨는 신난 듯 장관에게 자신과 아내를 소개했고, 자리로 돌아가 “장관에게 눈도장을 찍었다”며 기뻐했다. 그러자 마자 박씨는 장씨의 머리 위에서 “에…에취!” 소리를 내며 크게 재채기를 내뱉었다.

이어 박씨는 장씨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며 사과했고, 장씨는 “괜찮다”며 자리를 떴다. 이렇게 첫 장면이 끝났다.

장면이 거듭될 때 마다 박씨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장씨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장씨는 번번이 그를 처음 보는 듯이 대했다. 괜히 무시당하는 생각을 한 박씨는 끈질기게 사과했고, 장씨의 ‘괜찮음’은 귀찮음으로, 짜증으로 변해갔다.

‘재채기’는 장씨에게 심한 말을 들은 박씨가 소파에 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 취미 연극팀 ‘연인’의 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극이 끝나자 작중 내내 소심한 모습만 보였던 박씨는 쾌활한 성격의 본모습으로 돌아와 팀원들에게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구했다.

박씨는 “취미로 연극을 시작한지 2개월에 접어들었다. 이제야 대사에 맞는 표정과 동작을 구현하는 수준”이라며 “처음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또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아직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해 작중 내내 대본을 봤다”며 “얼른 외워서 완벽한 연기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을 이었다.

장관 역을 맡은 장씨는 “연극을 하며 맡은 인물을 통해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된다”며 “때로는 반성도 하게 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교훈도 얻는다”고 강조했다.

‘재채기’가 끝난 뒤 이어진 연극은 ‘가정교사’. 가정교사 줄리아가 집주인의 이른바 ‘갑질’에 적응해 나가는 내용이다. 가정교사 역은 이정순(43·여)씨, 집주인 역은 양명희(49·여)씨가 각각 맡았다.

양씨는 누가 봐도 ‘얄밉다’라고 생각될 만큼 집주인 역을 잘 소화해 냈고, 이씨는 집주인의 ‘갑질’에도 자기 할 말 다하는 ‘을’의 모습을 멋지게 연기했다.

양씨는 “처음 연극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며 “막상 해보니 일상과 연극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느껴졌다. 적어도 다른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연극은 어렵다. 대사를 외우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그만큼 도전 욕심이 생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을 열심히 연습해서 실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다졌다.

 

“자연스레 인생의 가치 배울 수 있어”

인터뷰 변종수 극단 다솜 대표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그렇듯 연극에서도 같은 말을 할 때 어떻게 표현하는 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이런 점을 잘 숙지해서 자신만의 표현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작품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반’처럼 끈질기고 비굴한 성격이 있는가 하면, ‘장관’처럼 거만한, ‘줄리아’처럼 똑부러진 성격이 있다. 때로는 줄리아처럼, 때로는 장관처럼 상황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연극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연극을 하다보면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인생은 연극과 같다’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말이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풀어나가는 것이 연극이다.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인생’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연기에 숙달되면, 누군가 말할 때의 표정, 소리의 떨림 등으로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연기는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장면을 거듭할 때 마다 ‘배려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앞으로의 추후 활동은

‘연인’의 뜻은 연극으로 맺어진 인연들이라는 뜻이다. 팀이 구성된 지는 고작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팀 이름처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팀 분위기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현재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내의 작은 팀이지만, 차후 동아리 결성을 앞두고 있다.

먼 이야기지만 생활예술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극단을 구성하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참고로 회원들이 연습하고 있는 ‘굿닥터’는 다음달 하순께 문화공연으로써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제주에서 ‘연극’의 입지는
아직도 열악한 편이다. 제주를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제주를 대표하는 연극은 없다고 본다.

외국의 유명 극본을 살펴보면 ‘신화’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제주는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충분히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한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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