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어 ‘심각한’ 소멸 위기 언어
유네스코 5단계 중 4단계
이유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
언어는 문화·사고 담긴 그릇
최근 전개되는 제주어 보전 노력
‘활용’ 전제 되지 않으면 소용없어
“선생님, 어제 텔레비전 나왔지예? 나 봔.” “기이? 무사 나완요?” “샘, 유명한 사람 닮다예?”
요즘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제주어 관련 교육을 진행 중이다. ‘근근 아보게’ 초등학생들과 제주어연극대본도 읽어보고 직접 대사도 해보며 연기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던 중 “연극한다”는 인터뷰 방송을 아이들이 본 모양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참 재미있다. 이 말 저 말 붙여진 꼴이다. 그렇지만 지금 아이들이 쓰는 제주어다. 기이?(그래?), 봔(봤어), 무사(왜), 나완요?(나왔어요?) 인(있어), 닮다(같다) 등등. 아무튼 어린아이들이 제주어로 말을 하면 얼마나 귀여운지, 뭔지 모르지만 요망진 아이 같다.
대본을 읽으면서도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어 한다. 마치 영어를 배우듯 어휘들을 배우지만,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하는 제주어 강좌에 오는 아이들은 영어보다는 쉽고, 우리말 보다는 쪼끔 어렵다고 하니, 그나마 좋은 평가라고 해야 하나?
제주어는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의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됐다. 이것은 제주어를 한 나라의 지방토속어라고 하기 보다는 고유의 언어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래아’ 등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아직 남아 있어 ‘고어의 보고’라고도 하는 제주어. ‘제주어’의 정의는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도민의 문화정체성과 관련 있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는 전래적인 언어’다.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독특한 말도 많다보니 제주어라고 하면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제주어는 분명 우리 한국에서 사용하는 언어다. 15세기 언어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국어학적으로 가치도 크지만, 제주문화의 실체를 보여주는 문화자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어는 왜 사라지는 것일까? 생활어임에도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하지 않아서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거나, 알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아도 별 문제를 느끼지 않으니 안 쓰는 것이다. 안 쓰다보면 차차 사라지게 되는 것, 그게 문제다.
솔직히 내 또래의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육지 사람을 만나면 제주어를 쓰기보다는 표준어로 대화했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더 소통이 잘 됐다. 무슨 뜻인지 세세하고 구차한 설명이 없어도 되고, 제주어로 이럴 땐 이런 말을 쓴다며 한낱 유머정도로, 재미로 사용할 때도 있었다.
언어는 인간의 문화와 사고가 고스란히 담긴 그릇이란다. 이러한 그릇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발전의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제주문화자산인 제주어는 그러기에 살아있는 언어다.
요사이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보전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언어학자들이 학문적 연구를 하고 구술 자료집을 만들고 제주어말하기대회를 해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제주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릇으로써 제주어를 어떻게 보전할 수 있을까? 올레·좀녀·정낭 등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어휘도 있지만, 이렇게 어휘로만 남아있는 것도 문제다. 제주문화와 결부된 제주어, 그것이 살아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이야기를 하는데, 제주정서가 담겨있는 제주어로 이야기해야 더 큰 감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속에는 제주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가 내재돼 있기에 더 큰 감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보전은 활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 다른 지방의 언어에 비해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로 생각하고 아주 낯선 언어로 여기는 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우리부터 자발적으로 제주어를 대화에 사용하려는 의지가 먼저 요구된다. 아무리 제도나 방법이 훌륭하다 해도 제주사람이 제주어를 사용 안하면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