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따라 ‘제1외국어’ 러시아어·일본어·영어로 변화
시대따라 ‘제1외국어’ 러시아어·일본어·영어로 변화
  • 제주매일
  • 승인 201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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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호동의 차이나스토리
<17>중국인들의 외국어
▲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외국어가 과거 러시아어와 일본어에서 최근에는 영어로 자리를 이동하는 모양새다, 더러는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 소통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이 될 즈음에는 이어지는 개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외국인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대로 넘어간다. 과거에는 러시아어며 일본어 공부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세계로 가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영어 학습, 더러는 한국어 배우기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러시아어가 중국인들에게 가장 중시되는 제1외국어로 존재했던 시기는 신중국 성립 직후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절대적 영향을 준 나라이자 개국 이틀 후인 10월3일 새로운 중국의 첫 번째 수교국이 된 당시 소련의 언어는 1순위 외국어였다.

그러니까 그 당시 중국인들은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픈 날엔 참고 견뎌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와 같은 시를 러시아 원어로 배워가며 어려운 시대에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특별한 지위의 언어로 대접받았던 영광도 잠시 중소 관계의 정치적 영향과 뒤에 이어지는 혁명으로 인해 외국어 학습 중심에 있던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은 소홀해진다.

다음으로 1972년 일본과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는 일본어가 한동안 각광을 받게 된다. 일본이 중국 시장에 많은 공을 들이며 우호적인 정책을 펴 가는 사이 일본어가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잠시 근대로 가보면 일본이 중국과 적대적 관계에서 전쟁만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인한 부국의 길을 목도한 중국의 선진 인사들이 일본을 배우기 위해 대거 유학했다. 많은 일본어 책자들이 번역돼 전해졌다.

이 때 일본을 통해 접하게 된 많은 서양 학문들의 일본식 한자 단어가 그대로 중국에 전해지게 되기도 한다. 경제·경영·회계·역사·자본·정치·은행·혁명·계급·철학·공산주의·외국어 등등은 중국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한자 단어들로 일본인들이 명명한 것으로 당시 받아들여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파되는 문화의 속성으로 봤을 때 중국 역시 한 때는 일본에 문화를 전했지만 근대 이후로는 일본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인류 문명 발달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전파한 주체가 굳이 자랑할 일도 아니고 받아 들이는 자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대적인 일본식 개혁개방으로 서양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새롭게 가꿔 나가지 않았던가? 정종과 와인, 오차와 커피, 생선회와 스테이크를 동시에 즐기는 일본인이다.

그리고 이어진 개혁개방 이후에는 영어의 시대가 본격화 된다. 중국의 과거에 있어 진짜 막강한 힘을 가졌던 외국어가 재등장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교육 기관을 세워 영어를 본격적으로 학습한 것이 1840년 아편전쟁 후인 것을 보면 시대가 어땠는지 그 배경을 짐작할만하다.

그리고 지금 외국인들과도 소통이 필요한 개방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점점 영어를 위주로 한 외국어 학습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 중국에 투자하여 규모를 키우고 있는 세계 대기업들의 대부분이 영어를 기본으로 소통하니 외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영어 비중의 사회로 급속히 변해 버린 것이다. 영어를 공통 언어로 하여 중국 내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공하는 우수한 일자리들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세상을 보다 상향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어 학습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중국의 영어 조 교육의 시작은 한국 어린이들보다 아주 어리다. 도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식들에게 쏟는 아이들에 대한 정성이야 한국 부모들 못지 않은 것이고 영어 조기 교육에서 잘 나타난다. 두 나라 부모들의 기를 받은 아이들이 조만간 영어를 공통 언어로 비즈니스를 겨룰 날이 멀지 않았다.

현재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 수가 5만을 넘고 있다고 한다. 한·중 수교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 유학이 처음에는 북경·상해·남경·천진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렇게 형성되었지만 현재는 내륙이나 연안과 사막 도시까지 한국 유학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는 중국어라는 한 어학에 주안을 둔 목적의 유학은 장단점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한국 모두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영어 학습의 열기에 빠져 있는 사회가 됐으니 이런 상황을 함께 겪은 양국의 학생들이 비즈니스 상대로서 만나게 되었을 때의 커뮤니케이션은 지금과는 달리 공통 언어가 생긴 상황이라 상당히 수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양국의 초창기 관계 발전에 큰 공헌을 세운 중국어 언어 도우미들의 역할은 차츰 씩 줄어들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공통 외국어를 찾아 소통하는 것이 서로의 이해 관계를 논하는데 있어 오히려 공평하기도 하고 또 결론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쪽은 모국어로 얘기하는데 한쪽에게는 그것이 외국어라면 소통은 균형을 잃기 쉽다.

시간이 흐르고 한국에 오는 중국인 관광객들 세대도 바뀌었을 때쯤에는 지금 영어 배우기에 열광이었던 두 나라 젊은이들이 만나 어떤 언어로 소통할지는 뻔한 일이다. 한국 여기 저기 상점들이 몰려 오는 중국인들 때문에 외국어 스트레스가 전보다 커진다.

말을 배워보자니 쉬운 일은 아니지 싶고 외면하자니 장사가 답답하긴 하다. 그래도 상인들은 장사를 잘 해야 하니 적당히 배워 두면 좋을 일이다. 중국어를 너무 잘하다 보면 흥정하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경계심을 가질지도 모르고 또 너무 잘 알아 들으면 설득 당하기 쉬울 수도 있다.

몇 마디 요긴한 문장 잘 익혀서 손짓에 몸짓까지 더한다면 그런 것도 또 여행객들에게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서 중국인들은 핸드폰에 번역된 한국어를 보여 주며 잘도 다니고 쇼핑도 잘 한다. 소통의 방법이 어디까지 진화할지도 궁금한 일이다.

<전 이노션월드와이드 중국본부장>

 

 

한국에 부는 중국어 배우기 열풍

과거 ‘유행’ 같았던 외국어와 달리 오래 갈 듯

옛날 조상들도 가장 왕래 잦은 중국어 공부

중국과 달리 한국은 어느새 영어도 중국어도 해야 하는 사회가 돼 버린 듯 하다. 한국도 세월의 변화와 함께 외국어 학습으로 요동치던 시절이 있었다. 영어는 세상 변화와 별 관계 없이 늘 진행형이었다. 때때로 일본어며 아랍어에 스페인어·러시아어에 이어 중국어에 베트남어까지 새롭게 부흥하는 나라가 생길 때마다 한국인들에게는 숙제와 같이 곁에서 배워야 한다고 소리치며 맴도는 외국어들이다.

한국에 중국어 배움의 열풍이 강하게 불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됐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의 중국어 학습 열기는 과거 유행처럼 ‘생명력’이 짧았던 여타의 외국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학습하는 계층도 연령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중국어를 썩 잘 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다른 나라 교포들과 같이 중국에서 낳고 자라면서 중국인들과 같이 공부한 원어민 수준의 언어 실력을 갖춘 젊은 한국인 언어 인재들도 많다. 한국인으로서 구사하는 훌륭한 중국어 실력이 든든하긴 하지만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부족한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체험의 약점은 극복해야 할 일이다.

여기 저기 중국어를 잘 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미래의 한중 관계와 이에 따른 수요를 예측해 본다면 기이할 일도 아니다. 실제로 중국인들을 대할 일도 많아진 세상이니 실용적인 외국어라고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마치 주기적으로 외국어 열풍을 유행처럼 만나면서 세상을 헤쳐 나간다는 느낌도 드는데 중국어는 아주 오래갈 것 같다.

그 옛날에도 중국어를 공부했을 우리 선조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께서 가장 많이 왕래하셨을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벼슬을 했던 선조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료도 있으니 해외 진출이며 역관에 상인들까지 중국을 오가며 양쪽을 연결하던 조상들 중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서, 누군가는 학문으로 누군가는, 노역으로 중국어 공부를 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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