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에서 떠올리는 제주의 미래
우도에서 떠올리는 제주의 미래
  • 송경호
  • 승인 2015.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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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것들에 점령돼 버린 우도
민낯 그대로의 매력 호젓함 실종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바뀌어

관광객 폭증 정말 축복인가
 섬들 ‘개발’ 광풍에 무너지고 있다 
제주섬도 크게 다르지 않아

우도는 ‘도떼기시장’이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전동카트에 점령돼 버린 길은 혼자 걷기조차 어려웠다. 가족은 섬의 좁은 길 위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빠른 것들의 위협에 도보 여행자들은 길 밖으로 떠밀리며 각자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작고 여린 섬이 품고 있다는 비경(秘景)은 그렇게 헤매는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달리는 이들 역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섬은 몸살을 앓고 있었고, 앓는 소리조차 탈 것들의 굉음에 묻혔다. 몸살 앓는 섬에서의 두세 시간은 그저 힘겹고 고단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딸은 어쩌면 더 이상 우도를 찾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이 길을 뒤덮고 있는 한 그럴 것이다. 20여년 전 첫 방문 이후 몇 년마다 찾던 곳이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를 빠져들게 했던 민낯 그대로의 매력과 호젓함은 사라졌거나 감춰졌다. 거칠어진 민낯을 더러 짙은 화장으로 가렸지만 안쓰러울 뿐이었다. 속도에 지쳐 찾아왔건만 속도에 쫓겨야 하는 상황 또한 당혹스러웠다.

짧은 시간에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이 놀라운 변화는 무엇에서 비롯된 걸까. 관광객의 폭증은 과연 축복일까.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도의 앞날도 덩달아 장밋빛일까. 우도를 떠나는 배 안, 여러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도에 다녀온 며칠 뒤, 섬연구소 발기인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연구소를 주도하고 있는 이는 강제윤. 3년 전 우리나라 섬 250개쯤에 발 들였다니 지금쯤 300개 이상 떠돌았을 거다. 그렇다고 그저 떠도는 유랑은 아니다. 보길도 자연하천 훼손과 댐 건설을 막기 위해 33일간 목숨 내건 단식도 벌인 그다.

그런 이가 연구소를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 숱한 섬들이 개발 광풍으로 다치고 무너지고 있지만 섬을 지키고자 하는 이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요즘 섬들의 상황은 참담하다. 백령도 갯벌은 무모한 간척으로 수백만 평이 사라졌고, 굴업도는 땅의 98% 이상이 대기업에 넘어갔다. ‘슬로시티’를 내세웠던 증도의 개발 이익은 고스란히 외지의 리조트와 숙박업체 몫이라는 거다. 게다가 연평도의 100년 된 어업조합 건물과 소청도와 덕적도의 전통가옥인 ‘돌너와 집’이 무너졌다. 안도의 당집도 파괴되는 등 섬 고유의 문화원형들도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전한다.

강제윤에게 섬은 ‘이 나라의 마지막 원형’이다. 자연과 문화, 사람살이의 원형이 살아있고 보존되고 있는 최후의 땅인 것이다. 그런 섬들이 토건의 탐욕과 개발의 광풍 앞에 점차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분별한 개발로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지만 그에 따른 이익 또한 섬과 섬사람들의 몫이 아니다.

섬이 개발의 바람에 무너지는 양상은 제주섬에서도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다. 제주를 찾는 이들이 날마다 늘고, 덩달아 땅값 오름세도 가장 가파르다. 쓸 만 한 땅들은 이미 파헤쳐졌거나 개발 예정이며, 경관 좋은 곳마다 낯선 건물들이 속속들이 점령하고 있다. 개발 명분에는 관광인프라 구축·명소화·편의 증대·소득창출·외자유치 등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다.

덩달아 제주섬의 제주다움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간다. 제주의 이른바 명소라 일컫는 곳들은 이미 도떼기시장이 돼버렸다. 제주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고, 앓는 소리조차 탈 것들과 개발의 미명과 굉음에 묻힌다.

무릇 섬의 고유성은 작고 여린 섬일수록 쉽게, 빠르게 잃는다. 제주섬이라는 어머니 섬에 딸린 자식 같은 섬들, 우도와 마라도 등이 그렇다. 최근 개발 바람이 솔솔 불고 있는 가파도와 비양도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을지도 모른다.

제주섬은 그 섬에 딸린 작은 섬들이 빠르게 걸어온 길을 거대한 규모로 다소 더디게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 보면 우도의 오늘에서 제주섬의 내일을 볼 수도 있겠다. 앞서 든 의문처럼 우도의 오늘이 ‘축복’이라면, 제주섬 역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섬연구소 발기문을 읽고 또 읽을수록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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