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마음으로 다가서는 수화(手話)
먼저 마음으로 다가서는 수화(手話)
  • 이영자
  • 승인 2015.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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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지인께서 중국어 참 잘한다며 TV에서 봤다는 말씀에 갑자기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참을 빤히 쳐다보자 지인께서는‘아참, 수화? 수화지!’하시며 손가락을 가리키시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 제주방송의 모 프로그램에서 우리 부서에서 운영하는 수화교실을 촬영할 때 ‘제일 수화 잘하는 사람이 누구죠?’란 리포터의 질문에 필자가 우연히 지목되었다. 사실 수화를 잘하던 동료들이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아 울며 겨자 먹기로 촬영한 것뿐인데, 방송에 그렇게 방영되다보니 정말 수화를 잘하는 사람으로 그려진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말 수화를 잘하기 위해 수화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부서는 매주 목요일 아침에 제주특별자치도 수화통역센터의 고영산 선생님을 모시고 수화 강의를 받고 있다. 농아인의 언어를 배운다는 게 참 낯설게 느껴지고 어렵다 생각되겠지만 수화 형성의 과정을 쉽게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의 재치에 평소 느꼈던 수화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특히 낫 놓고 ㄱ자도 모르던 아들 녀석이 손가락으로 만드는 글자인 지화(指話)를 통해 한글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면서 수화에 대한 필자의 열정은 더해져만 갔다. 하지만 수화를 배운 만큼 필자가 직접 농아인을 대면하는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는데 드디어 개별공시지가 관련으로 농아인이 오셨다.설레는 마음으로 수화로 인사를 하려 했는데 민원인께서 메모지로 한 자, 한 자 적으시며 행여나 폐를 끼치는 게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물어 오셨다. 타인이 불편하지 않게 건청인(健聽人)을 먼저 배려하는 그 분의 통 크고 고운 마음씨에‘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는 넙죽 절 받듯이 수화도 하지 않고 메모지로 상담을 마칠 동안 이제껏 그리 연습한 ‘커피 드릴까요?’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지금껏 손으로 그리는 언어만 배웠을 뿐이지 남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마음을 배우지 못한 탓이라 여기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수화 배우기에 정진하려 한다.

먼저 마음으로 다가서기!

모든 민원인께 더 큰 감동을 선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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