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출마의 변
알맹이 없는 출마의 변
  • 한경훈 기자
  • 승인 2015.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향인사 총선 출마선언 잇따라 
중앙 인맥·경험 내세우지만 
지역발전 위한 정책 제시 미흡 

후보자 정책능력이 선택의 관건 
화려한 ‘스펙’에 현혹되지 말고 
유권자들 보다 엄격히 검증해야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돌아와 삶을 마감한다.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제 살던 굴 쪽으로 둔다고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인간에게도 귀소 의식이 있다. 특히 한국인이 유별나다. 추석 등 명절 때 귀성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강한 소속감을 가지는 기질이 빚는 독특한 현상이다. 타향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 고향을 위한 봉사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는 정치에서 그 길을 찾는다. 정치인 꿈이 귀향 모티브로 작용한다. “고향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 진정이든 아니든 정치에 뜻을 두고 귀향하는 인사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4·13총선을 겨냥한 도내 예비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의 출마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현덕규 변호사는 지난달 8일 새누리당 입당과 함께 총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제주시을 선거구 경선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 출신 강경필 변호사도 같은 달 22일 새누리당 입당과 동시에 서귀포시 선거구 출마를 밝혔다.

이들 변호사는 고교 졸업 후 제주를 떠나 줄곧 외지에서 생활했다. 고향을 정치 데뷔무대로 택했다. 출마 기자회견에서 한결같이 “고향 발전을 위해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깨끗한 정치’ ‘섬김의 정치’ ‘법조 경험과 인맥을 활용한 지역현안 해결’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향 제주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지역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시는 없었다. 원론적인 얘기로 회견을 일관했다. 진흙탕 정치판에 뛰어든 절실함도 느낄 수 없었다. 이번이 도민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이니 만큼 지역발전 비전에 대한 구상의 일단은 보였어야 했다. 대표 공약 하나쯤은 발표하는 게 마땅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귀향 인사들은 지역에서 커온 정치 지망생과는 달라야 한다. 그동안 지역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남다른 비전과 정책으로 “출마할만 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중앙 경력을 밑천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거머쥐는 시대는 지났다. 설득력 있는 정책으로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역대 선거를 돌이켜보면 중앙에서 내려와 낙선 후 지역을 떠나 감감무소식인 인사들이 더러 있다. 잘나가던 그에게 고향이 쓰라림을 줬다. 하지만 낙선은 진정성 없이 지역발전을 외치며 선거에 나섰던 댓가다. 정치가 아니라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지역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선거에 떨어지고도 고향에 계속 머물며 이를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 봉사 운운했지만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입후보의 주된 목적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중앙 인맥과 경험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유권자들이 보다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대야 하는 이유다. 화려한 ‘스펙’에 현혹돼선 안 된다. 정책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지역에서 봉사하고 땀 흘린 후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도내 3개 선거구에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는 현재 20여명에 이른다. 이들 역시 슬그머니 링에 오르려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출마선언 때는 실현 가능성 있는 선거 공약을 밝혀야 한다. 정책 준비 없이 선거에 나서는 것은 판매되지 않는 쇼윈도 상품만 늘리는 격이다. 유권자 선택에 혼란만 줄 뿐이다.

‘불량 후보’를 막기 위해서는 당내 경선에서부터 정책대결이 활성화돼야 한다. 강·현 변호사가 일찌감치 출마선언을 한 만큼 이를 주도할 수 있다고 본다. 조직 다지기 못지않게 정책 개발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당락에 관계없이 고향의 새로운 정치문화 조성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선거에 임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