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법 ‘청부개정’ 추진 주민 당혹
도민 춤추게 하는 정책 결정 기대
협치(協治)를 내세운 원희룡 지사의 ‘협치 성적표’는 기대만큼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최근 타결된 지하상가 문제를 제외하면 갈등 사안들은 진행형이다. 갈등의 1순위였던 해군기지는 원 지사가 여러 차례 공언했던 해군관사 이전에 실패하면서 해결은 더욱 난망해졌다.
후보자 시절 반대한다던 영리병원은 원 지사가 마치 선봉대라도 되는 모양새로 강행만을 외치는 형국이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까지 도청 누리집을 장식했지만 내용이 일방적인데다 의사들을 돈벌이만 집작한다는 ‘뉘앙스’의 내용도 포함시켜 빈축만 사고 있다.
영리병원 반대 측은 시민사회의료단체들을 중심으로 원희룡 지사를 ‘제2의 홍준표’라고 명명하면서까지 영리병원 허용 방침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중국 녹지그룹 제주사무소에서 도청까지 철회 촉구 ‘삼보일배’ 행진까지 벌였다.
연삼로를 가다보면 제2첨단과학단지에 대한 반발의 내용을 담은 펼침막이 길가를 따라 펼쳐져 있다. 내용이 강정 해군기지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토지주 등 주민동의 없이 강행되면서 원 도정과 JDC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지난 3월 20일, ‘개발천국’ 제주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대법원 판결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법원은 예래휴양형주거단지사업에 대해 유원지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사업이 원천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요약하면 유원지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공공성이 부족한 분양형 숙박시설을 지음으로써 공공이 유원지에서 누릴 수 있는 복리를 배타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봤다.
여기서 원희룡 도지사는 예래휴양형주거단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원 지사는 소송을 제기했던 토지주와 ‘협치’ 대신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이를 뛰어 넘겠다는 ‘3선 국회의원’ 출신다운 입법전략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영리병원은 법대로 하자고 하고 예래휴양형주거단지는 법을 뛰어 넘자고 하는 게 원 도정의 논리라면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청부입법’이라는 날선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법개정 추진으로 제주사회는 다시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련법 개정을 발의했지만 정작 법안의 내용도 잘 모른 채 서명했다는 ‘KBS시사파일제주’의 보도 등으로 역풍을 맞고 스스로 이름을 빼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실제 최근 통화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름 뺐으니 더 이상 의원님이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소송 당자자들 입장에서는 “지난 7년이라는 시간동안 조상대대로 내려온 땅을 강제수용 당한 억울함을 딛고, 예래동을 공동체가 살아있고 주민이 주인 되는 터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다시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인 셈이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원 도정이 추진하는 특별법 개정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지난 9월 24일 ‘제주도특별법 개악 저지 범도민대책회의’라는 명칭으로 법 개정 저지와 새로운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반면 원 지사는 최근 “지금은 일부 개인, 단체들의 의견만 그게 전체 주민들의 뜻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특별법 개정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9월29일 발표된 제주MBC 여론조사에서는 예래휴양형주거단지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응답이 59%, ‘특별법을 개정해서 공사를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이 27.1%에 그쳤다.
또 다시 영리병원처럼 여론조사가 잘못됐다고 반박할 것이 아니라면 원 지사는 이제 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 봐야한다는 여론인 셈이다. 행사장에서 도지사가 춤추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도민의 삶이 걸린 정책에 대해서 진중하게 그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도민들을 춤추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래동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