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교육 등 모든 것에 감사하지만…외로워”
누구는 배고픔을 참지 못 해 누구는 가족이 와 있어서, 그곳에는 희망이 있다기에 한 목숨을 내놓고 건너온 남한. 그런데 다시 마음 한 켠에 깊은 외로움이 자리했다.
"나는 (문화가)다른 것 같지 않은데, 친구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한솔(가명) 군은 지난 겨울 남한에 들어온 후 올 봄 제주에 정착했다. 이어 분홍 벚꽃들이 질 때 쯤 제주시내 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출신성분에 막혀 꿈을 키울 수 없는 북한과 달리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고, 매일 점심 급식이 나온다는 사실도 고마웠지만 친구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다들 북한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생각들이 있나봐요. 근데 본질은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다르지 않거든요."
이 군은 북한에서 고급중 3학년(이 군에 따르면 북한의 학교 편제는 소학교 4년, 초급 중 3년, 고급중 3년으로 돼 있다)에 다니다왔다. 한국처럼 그곳에서도 교복을 입었고, 영어도 배운다. 수학 과목도 있다. 다만, 영국식 영어를 배우고 점심을 집에 가서 먹어야 한다. 학교에서 김씨 가문에 대해 배우는 점 정도가 다를까.
이 군은 축구를 좋아한다. 복싱도 좋아한다. 운동을 다 잘하고 다 좋아한다. 그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들과 공감대의 끈이 이어질 만도 하지만 뭔가 그들과 자신 사이에는 강이 흐르는 것 같다.
이 군은 제주에 와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친구들과의 거리감을 꼽았다.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에게 이질감 느끼지 말고, 부산이나 전라도 사투리 듣고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그렇게 북한 사투리도 들어줄 수는 없을까요…"
현재 제주도내에는 20여명의 탈북 학생이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다문화 가족이나 장애학생에 대한 관리와 지원은 별도로 이뤄지지만 아직 수 적으로 열세인 탈북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체계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4월께 탈북학생의 성장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사업 추진을 공표하고 상담·진로캠프·담당교원 역량 강화 연수 등을 시작했다.
제주지방경찰청도 신변보호관을 활용해 탈북 학생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해주는 '더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탈북 학생 지원은 시작단계다. 성장단계상 또래집단과의 교우가 긍정적인 자아발달에 중요한 전제가 되는 청소년기 탈북학생들의 과제를 해결해 주기에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인식 전환'이라는 과제가 결코 만만한 숙제가 아니다.
언젠가 인터넷 위성지도를 통해 고향 마을을 찾아본 적이 있다. 이 군의 고향은 백두산에 근접한 마을이다. 겨울이면 쇠붙이에 손이 달라붙던 기억도 이제는 새록새록하다.
이 군은 오늘도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학교로 향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곳에서 위로가 되는 친구를 아직은 찾지 못 했다.
더 다가가기 위해 말을 꺼내면 그 순간 멀어지는 사람들. 이 군이 떠나온 그 곳을 그리워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