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셈블리’와 한국의 정치
드라마 ‘어셈블리’와 한국의 정치
  • 김계춘
  • 승인 2015.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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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정치인은 역시 ‘꿈’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현실 정치
여·야 대표가 그 주인공

‘사면초가 김무성’ 등 정치권 내홍
본질은 바로 ‘밥그릇 싸움’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만 판쳐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狡兎死良拘烹),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高鳥盡良弓藏),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敵國破謀臣亡).”

중국 한(漢)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이었던 대장군 한신(韓信)의 탄식 어린 독백이다. 그는 유방을 도와 초패왕 항우를 멸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결국 한고조(유방)를 배신(背信)한 역적으로 몰려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KBS TV의 정치드라마 ‘어셈블리’가 얼마 전 종영됐다. 이 드라마는 조선소 해고노동자 출신 진상필(정재영 역)의 국회 진출기와 활약상을 그렸다. 특히 국회의원 보좌관 10년 경력의 정현민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집필했다는 점에서 방영 초기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에서 진상필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민을 더 우선시한다. ‘정치공학’을 넘어 ‘정치공작’까지 난무하는 국회에서도 독자적인 정책 노선을 고수하며 올곧은 정치인상을 구현하려 애쓴다. 어쩌면 진상필은 보좌관 출신인 작가가 꿈꿨던 이상적인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어셈블리’는 당초 기대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를 두고 여러 평들이 나오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드라마 속 정치 이야기보다 현실의 정치가 너무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근래 들어 한국의 정치, 정치계가 펼치는 제반 상황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엔 여·야 대표가 모두 등장한다. 이들에게 붙여진 타이틀도 ‘사면초가 김무성’ ‘여의주 뺏긴 문재인’ 등 그럴듯 하다.

우선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의 경우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순탄하게 잘 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마약사위’ 문제가 들춰지더니 ‘호가호위(狐假虎威) 무사’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대권 불가론’이 제기됐다. 이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오픈프라이머리 책임론’이 대두되고 급기야 부친의 친일행적마저 까발려졌다. 마치 내밀하게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연상케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다. 최근 혁신안이 통과되고 당무위-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 재신임을 받아 겉으론 일단 ‘승자(勝者)’의 모양새다. 하지만 비주류를 설득하여 당의 단합을 이루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 만에 하나 당이 분열되면 ‘여의주(호남)’를 뺏길 것은 뻔하고, 친노(親盧)만의 결집으로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의 성공을 기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금의 여·야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내홍(內訌)의 본질은 딱 하나, 바로 자신의 세불리기를 통한 공천(公薦) 등의 ‘밥그릇 싸움’이다. 눈을 씻고 그 어디를 둘러봐도 올곧은 정치인상이나 국민들을 위한 바람직한 국회상 등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평론가 전성시대’에 걸맞게 각종 시나리오가 정치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한신 대장군을 빗댄 ‘토사구팽’론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오월동주(吳越同舟)’론도 나온다. 그 중에는 문재인이 잘 되어야 김무성도 살아날 수 있다는, 그래서 둘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심지어 ‘충청대망론(반기문)과 영호남화합(김부겸) 대결’론도 나오는걸 보면 지금이 전문가-평론가 전성시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TV 드라마 ‘어셈블리’에선 국회의사당 기둥이 24개이며, 본회의장 전등이 365개란 사실도 보여준다. 그 속에 ‘1년 24절기 365일 내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 담겼다는 것은 필자도 처음 알았다. 과연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이 뜻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면 오늘과 같은 꼴불견의 상황들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진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콜린 클라크는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로 부를 만한 국회의원을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 처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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