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요 노랫말 속에 제주역사·문화 녹아
선조들의 다양한 삶 체감할 수 있어 '호응'

“엉 허야 디야/엉 허야 디야/당선에서 멜발을 보고/망선에서 후림을 논다/엉 허야 디야/ 엉 허야 디야/닷배들아 진을 재왕/ 앞 괴기는 후진을 노라/엉 허야 디야/ 엉 허야 디야…”
멜 후리는 소리(멸치 잡는 소리)는 제주 선조들이 그물로 멸치를 잡을 때 부르던 노동민요다.
지난 16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국악 강의실. 제주민요동아리(회장 송일영) 회원들은 한 줄로 앉아 안복자 제주소리 강사의 장구소리에 맞춰 ‘멜 후리는 소리’를 불렀다. 회원 한 명씩 선창하면 나머지 회원이 후렴구를 부르는 형식이다.
느리고 구슬픈 가락으로 시작된 이 민요는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빨라져 절로 흥이 나는 가락으로 변했다. 일부 회원들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늉을 하는 등 실제 선조들의 멸치 잡는 모습을 표현했다.
강봉희(49·여)씨는 제주 민요가 익숙하지 않은지 버벅대기도 했지만,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 있게 불렀다.

강 씨는 “아는 분의 추천으로 참석하게 됐다. 제주민요는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해보고 나니 너무 흥겨워 계속 나오게 됐다”며 “오늘이 세 번째 출석으로 아직 어색하지만, 더 열심히 해서 다른 회원들처럼 멋지게 한곡 불러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멜 후리는 소리를 모두 부르고 나자 안복자 강사는 회원들에게 제주 민요의 특징을 설명했다.
제주 민요의 대부분은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동요라고 한다. 그 안에는 제주인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있다.
시집살이에 대한 서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아이를 키우는 막막함 등 여성의 ‘한’을 토로하며 부르는 민요가 많다보니 주로 여성을 통해 구전된다.
특히 마을마다, 부르는 사람마다 구전되는 가사가 달라 민요 하나로도 다양한 삶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고래고는소리(맷돌노래)’는 구전되는 가사만 300~400여개에 달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울분을 노래한 맷돌노래가 있는가 하면, 의붓어머니에게 시달리는 딸의 서러움이 녹아있는 맷돌노래도 있다.
또 어촌에서 부르는 어업노동요가, 농촌에서는 농업노동요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노랫말 속에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선조들의 삶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다 보니 관광 통역 안내사 오연순(58·여)씨는 제주 민요를 배우는 데 푹 빠져 있다.
오 씨는 “일본어 통역안내를 하고 있는데, 민요를 배운 뒤 통역 뿐 아니라 제주의 문화도 보다 현실감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며 “제주 민요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불러주면 따라 부를 만큼 인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 재일제주인 동포들에게 제주민요를 알려 주면, 간접적으로나마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체감할 수 있어 그런지 상당히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민요.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은 사람, 서양음악을 하던 사람들도 제주민요 배우기에 도전한다.
김용훈(60)씨는 “30년간 서양음악을 배웠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풍물을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제주민요도 배우게 됐다”며 “훗날에는 양악과 제주민요를 합한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회원들은 제주의 대표적인 민요 ‘오돌또기’를 부르며 강의를 끝마쳤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이 나온다/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가나/둥구래 당실 둥구래 당실/너도 당실 연자 버리고/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가나…”

송일영 회장 인터뷰
▲가입 연령층은.
나 같은 경우는 제주의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민요를 배우게 됐다. 제주 민요를 배우면 ‘제주’를 보다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탐구심에 민요동아리에 가입한 회원들도 있지만 대부분 제주의 민요가 좋아서 가입한 회원들이다.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몇 강의 들으러 동아리를 찾아왔다가 제주민요의 매력에 빠져들어 계속 배우는 회원들도 있다.
연령대는 주로 50~60대로, 50대 중반인 내가 막내라고 불린다.
▲제주민요의 매력은.
힘들고 고된 노동, 반복적이고 지루했던 삶을 노래로 풀어낸 것이 제주민요다. 하지만 삶을 토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것을 극복하는 과정도 민요 속에 담겨져 있다.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구슬프게도, 신나게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또 마을마다 구전되는 노래와 가사가 다르다 보니 한데모아 비교·분석해볼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제주민요만 배우는가.
그렇지는 않다. 제주민요를 주로 다루기는 하지만, 다양한 지방의 민요도 함께 배운다.
다른 지방의 민요와 제주의 민요를 비교해보고 그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제주민요 중 하나인 ‘오돌또기’도 원래는 타 지방 민요지만, 제주로 구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민요가 구전되면서 ‘한라산 중허리’, ‘서귀포 앞바다’ 등 제주를 특징하는 가사가 붙여진 것이 지금의 ‘오돌또기’다.
이처럼 다른 지방의 민요를 배우면서 그동안은 모르고 있던 제주민요의 유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대외활동도 하는가.
매년 분기마다 요양원에서 공연봉사를 한다. 공연 봉사를 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호응이 상당히 좋아 좀 더 늘릴 예정이다.
또 향후 대외활동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민요는 문화적 가치로 ‘보존’을 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주민요는 빠른 속도로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제주민요를 부를 수 있는 전승자분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은 80~90대 노인들 이다보니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어렵다.
제주민요동아리가 앞장서서 도민들에게, 특히 제주 어린 학생들에게 민요를 하나, 둘 가르쳐 제주민요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