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언니’들과 공감하며 보낸 닷새
스크린 속 ‘언니’들과 공감하며 보낸 닷새
  • 안혜경
  • 승인 2015.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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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영화제 5일간 열려
15개국 41편 영화 선보여
감독과의 대화로 궁금증 풀어내

이타적 삶 살았던 제주여인 김만덕
핍박과 가난 겪는 여성노동자
‘사유와 실천’ 삶 지평 넓히는 계기

닷새간 열린 제16회 제주여성영화제가 15일 막을 내렸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았고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는 우리들과 15개국 41편의 영화들로 대화하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멕시코에서도 종이로 장식한 기원(祈願)의 의미들이 상영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났기에 상영관 내외에 제주의 ‘기메’를 차용해 제주적 특성과 영화 속 내용들을 연결시키는 장식을 했다. 축제의 장으로서 만석(滿席)의 기원과 가부장제적 여성 희생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관객들은 정성스러운 손길로 느껴주었는데, 1970년대 말부터 시도된 민속 문화에 대한 뿌리 찾기가 근대화 과정과 1960~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며 심어진 토속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벗겨냈다는 긍정적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는 네 번의 특별 대화와 두 번의 깜짝 이벤트로 전문 연구자, 등장인물 및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 되어 방금 본 영화 속 내용을 확장하고 파고들며 궁금함을 풀어내기도 하였다. 윤석남 예술가의 작가 인생에 대한 아주 짧은 다큐멘터리 ‘심장’ 속에서 주부로만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갑갑함과 그 분출의 경로를 확인하고 가능성을 가슴 뛰며 만날 수 있었다. 제주 여인 김만덕에 대한 작가가 느낀 감동과 예술적 표현은 이타적 삶을 살았던 통 큰 제주여인의 역사를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윤석남 영감의 원천인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근원은 가난함 속에서도 창의적 과자놀이로 자존감과 올바름을 자식들에게 심었고 힘듦 속에서도 더 힘든 주변을 품어낸 놀라운 어머니에 대한 존경이었다는 것. 아버지의 예술혼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의 창의적이고 윤리적 교육이 결국 이런 성찰적 예술가를 만들어내는 뿌리였다. 세상과 맺는 관계의 길을 밝혀 보여준 ‘언니’인 윤석남작가를 만났다.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요즘, 미국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성추행 사건을 되짚어가는 다큐멘터리 ‘아니타 힐’은 우 지사 성희롱사건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아니타 힐에서 보여준 여성 단체들과 여성 정치인 그리고 개인들과 남성 법조인들의 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신직인 대법관 임명을 강행한 대통령과 남성의원들. 그 이후 신체 위해와 교수직 박탈에 대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아니타가 실행해나간 강연과 교육들을 보면서 왜 이곳에서는 그런 지지와 지속성을 갖지 못했는지 안타까움이 더욱 커졌지만, 아니타 ‘언니’의 꿋꿋한 대처와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배웠다.

미래 세대에서 ‘훔쳐온’ 이 자연을 회복해나가는 일과 아이들의 삶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활동은 동일선상의 일이라는 ‘뿌리와 씨앗’ 활동에서 역시 제인 구달 ‘언니’의 포기함 없는 놀라운 사랑의 넉넉한 품을 배웠다.

‘언니’들을 만났던 영화제에는 선한 ‘오빠’들도 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영화제를 찾아 매일 어김없이 A4 용지에 운율을 맞춘 예술적 글씨체로 그 감상을 적어 수줍게 건네 준 ‘길 위의 철학자’ 같은 분. 열심히 일했음에도 격려와 애정 보다는 핍박과 가난을 계속 겪어내야 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의 이야기와 장면적 이해들을 도운 ‘위로 공단’의 임흥순 감독과의 특별 대화. 물질 과정에서 해녀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삶에서 느낀 고단함을 치유하는 미술체험 과정과 인터뷰를 담아 해녀의 강인함과 그 뒷면의 고통을 우리에게 ‘그림 그리는 해녀’로 보여준 함주현감독과의 깜작 토크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충격적 사건으로 종종 등장한다. 확연하게 정의내릴 순 없으나 페미니즘은 ‘다름과 차이를 갈등이 아닌 자원으로 삼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또 이동 변화하며 성장하는 경계에 대한 사유이며 실천’이다.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슬픔과 즐거움, 분노와 위안” 속에서 제주여성영화제가 올해도 그 사유와 실천을 가능케 하며 삶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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