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사회적인 관습 혹은 고정관념에 의해 달라질 수도 있고,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과 같이 요즘 모든 사람들의 주관에 따라서 ‘미인이다’‘아니다’를 판정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외모지상주의가, 북한에 핵 보유를 자제하도록 하는 세계평화주의보다 몇 배나 높은 관심사로 부각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얼짱 시대가 청소년겮女煽??사로잡더니 몸짱시대가 중년 남녀층을 사로잡고 있다.
요즘은 여자들이나 남자들의 실력보다도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실력이 보편적인 기준에 들기만 하면, 미모에 의해 직장에 입사되며, 모든 대인관계 일들이 첫인상(미모)에 대한 선입감으로 70%가 결정된다는 통계를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 사회는 미모도 경쟁이 되고 자기 자본이 되는 시대인 것 같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영부인도 성형수술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 여성들의 얼굴을 위하여 바치는 돈과 시간과 정성은 대단한 것 같다. 최근 신문을 보면 젊은 여자들이 국내 성형수술로도 간이 안차 중국으로 원정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잘못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생을 포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서울 압구정동에 가면 똑같은 수술을 받아 비슷한 얼굴을 하고 다니며, 행색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쌍둥이들을 본다고 한다.
하기야 살기위해 좋은 직장에, 좋은 대인관계를 가지겠다는 죄없는 허위를 만들고 있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나는 그럴 필요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얼굴이라면 원색 그대로 가 아주 좋은 것이다. 찬물로 세수를 한 젊은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어디 있겠는가? 늙은 얼굴이라면 남편이 성형외과 의사이던 화장품 사장이라도 예뻐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생생한 생명력에서 오는 것 같다.
나는 매일 아침 운동을 집에서 가까운 제주시 신산 공원에 가서 1시간 내외를 조깅한다.
조깅을 하는데 운동을 하는데서 오는 운동과부하 고통을 이런 청순한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또한 즐겁게 운동 할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상상만으로도 청순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물리적인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을 보면 이성의 아름다움의 파워는 대단한 것이며, 문화의 기초이며 근원이라고 생각하면 과장된 생각일까?
참다운 여성의 아름다움은 이른 봄같이 맑고 맑은 생명력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맑은 생명력을 가지기위해서는 외모를 성형할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정신을 성형해야 할 것이다. 정신성형 수술의사는 책이다. 책이야말로 생명감을 가장 빨리 충족시켜주는 정신의 양식이며 아름다워지는 수술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귀족여성들의 제일 아름다운 절정기는 오십대 후반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때가 여성의 원숙한 미, 인생의 참된 미를 완성한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은 나이 들어가는 귀족 여성을 위안하고 곱게 늙고 있다는 안타까운 체념적인 의미도 있지만, 정신의 원숙하다는 의미도 내포된 것이리라.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여자의 아름다움, 그것은 우리 범생의 슬픈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살고 있는한 가지고 있는 희망, 자비를 생활화하는 부드러움의 유지 등등.
이런 것들이 여성의 아름다움이 퇴화를 상당히 막아주는 것은 사실이다.
김 찬 집<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