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흥미 잃은 학생들 즐거움 되찾아
잠자는 애들, 학교 생활문제 등도 해소
다른 학교 교사들에게도 열린 공개수업

최근 들어 학교내에서 수업혁신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혁신학교라는 틀이 제시되면서 학교 자체의 수업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혁신학교는 교육당국과 학교-교사라는 틀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완벽한 틀 없이 수업혁신을 일구는 곳이 있다. 제주시내 특성화 고교인 제주중앙고(교장 채칠성)이다. 제주중앙고가 들고 나온건 ‘배움의 공동체’다.
▲제주 첫 ‘배움의 공동체’ 시도
배움의 공동체는 일본 도쿄대의 사토 마나부 교수가 주창하면서 퍼지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교육행정 담당자 모두의 연대를 기초로 실천적 배움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제주중앙고는 혁신학교는 아니다. 배움의 공동체를 시도하는 학교 대부분이 혁신학교이지만 제주중앙고는 제주형 혁신학교보다 앞서 배움의 공동체를 시도했다는 점이 특색이다.
제주중앙고에 배움의 공동체가 시도되기 시작한 건 2011년이다. 제주중앙고 교사들은 그 해 6월부터 4차례에 걸쳐 혁신학교이면서 수업으로 유명한 경기도의 장곡중학교를 찾아 수업혁신을 준비하게 된다.
지난 달 25일 1학년 영어수업 공개수업 현장. 수업시작의 첫 마디는 “교과서를 펼치세요”가 아니라 “교과서를 덮으세요”였다.
‘교과서를 덮으라’는 건 교과서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교과서만을 기본으로 교육을 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교사들은 매시간 학생들이 해당 시간에 배워야 할 것을 한 장의 활동지에 담는다.
이날 활동지에는 봉사활동을 가장 선호하는 요일별 그래프를 담았다. 그래프를 보면서 어려운 문장을 스스로 독해하게끔 구성했다. 개략적인 설명이 이어진 뒤 4~5명씩 모둠이 구성됐다.
그런데 특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모둠이 구성되자 참관 교사들이 바빠졌다.

▲교사끼리 수업 공개하며 수업 진단
제주중앙고는 교사들의 수업을 서로 공개한다. 그런데 수업공개에 참관한 교사들은 교사들의 수업 실력을 보지 않는다. 참관 교사들은 모둠에 기대 학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그 점이 특이했다.
특이한 점은 더 있다. 학생들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특히 영어 독해를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날 영어수업은 영어문장을 읽고 교사가 나눠준 활동지에 그래프를 그려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독해가 막히자 영어사전을 뒤지는 학생, 같은 모둠의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도우미가 돼 나서기 시작했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광경이다. 교사는 배움을 주면서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였다.
이웃 학교의 교사도 이날 수업을 직접 보러 왔다. 그 교사는 “학생중심의 수업을 한다고 해서 수업참관을 하게 됐다. 교사들의 수업스킬을 보지 않고 학생을 관찰한다고 해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흔히 공개수업은 시나리오를 따른다. 정해진 순서가 있다. 그러나 제주중앙고의 공개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와 스스로 협력을 끌어내는 장면이 나타난다. 때문에 일반적인 공개수업과 달리 결과가 같게 나올 수 없다. 늘 답은 다르다. 거기엔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담보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중앙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학교때부터 학습에 흥미를 잃은 경우가 많다. 수업에서 소외되거나 좌절을 맛본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수업을 하면서 바뀐 게 많다. 수업만 바뀐 게 아니라 학교가 바뀌고 있다. 제주중앙고 채칠성 교장은 수업혁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못한다고 소외되진 않죠. 잠자던 애들도 없어졌어요. 평소 따분한 수업도 달라졌어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생활문제도 해소되더군요.”
제주도내 교사들은 제주중앙고 공개수업 현장을 자주 들른다. 채칠성 교장은 제주시내 모 중학교 교사들의 수업참관 내용을 들려주기도 했다.
“올해 제주중앙고 3학년 가운데 은행 2곳에 한꺼번에 합격을 한 학생이 있어요. 중학교 당시엔 마치 문제아로 인식을 했나 봐요. 그 학생들을 지도했던 선생들이 수업참관을 하면서 그 학생이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일제식 수업을 탈피한 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공개수업이 끝나면 수업을 진행한 교사와 참관한 교사들이 평가회를 갖는다. 평가회는 교사들의 단점을 지적하는 자리가 아니라, 애들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자리이다. A교사 수업 때는 잘 참여를 하지 않던 학생이 B교사 수업 때는 활동을 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에 대해 교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수업을 진단하게 된다.
▲“학생들 이야기에 경청”
그러나 이런 수업을 하려면 수업을 디자인하는데 들이는 교사들의 시간 소모가 엄청나다. 모든 활동지를 새로 구성하고 짜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주중앙고는 새로운 수업 모델을 학교 차원에서는 제주도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을 했다. 채칠성 교장은 제주도내 중학교에서부터 수업이 바뀌길 바라고 있다.
“중학교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어요. 공개수업을 할 때였는데 학생보다 많은 60~70명의 교사들이 한꺼번에 와서 보기도 했어요. 그건 관심이 있다는 말이 거든요. 특히 지금 자신의 수업에 답답해하는 교사들이 많아요.”
제주중앙고는 수업 변화와 아울러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웬만하면 학생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주고 이를 실천해준다. 학생회의 공약을 실천해주는 것도 학교의 몫이다.
취재 당일 전날에는 제주에 비가 왔다. 마침 학생회의 공약 가운데 ‘비를 맞지 않게 해준다’는 게 있었단다. 학교측은 우산을 준비해오지 않는 학생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 1회용 비옷을 준비했다. 그냥 준 것은 아니었다. 100원이든, 200만원이든 학생 자율에 맡겼다. 대만족이었다. 자신들이 결정한 게 눈 앞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올해는 ‘꿈·끼 탐색주간’도 처음으로 운영했다. 시험 보고난 뒤 시간을 허비 하지 말자며 학급별 합창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하라고 준 자리였다.
이런 변화는 믿지 못할 또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그건 일반고에서 이곳 특성화고교로 전학을 오겠다는 문의였다. 올해 1학기만 하더라도 8명의 학생들을 뽑는데 동지역 일반고에서 30명이 넘게 지망했다.
제주중앙고의 변화는 성장 중심이 아니어서 가능했다. 꼴찌라도 자신의 꿈을 가지면 그런 아이들에게 힘을 주겠다는 걸 내세우는 학교이다.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가는 교육이어야죠. 위로 가려면 누군가 밟아야 하는데, 앞으로 나가는 것은 손잡고 함께 갈 수 있잖아요.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죠.”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