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부르지 않는 날을 위하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부르지 않는 날을 위하여
  • 이종일
  • 승인 2015.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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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대표 6개항 합의
민간교류 활성화서 ‘문화’ 중요
진실한 소통 유발 화합 밑거름

10년전 평양서 ‘조용필 콘서트’
마지막 ‘홀로 아리랑’ 조용한 합창
문화적 충격에 잔잔한 감동


일주일 전 남북고위급 대표들은 무박4일간 장장 43시간의 마라톤협상을 마무리, 25일 새벽 2시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6개의 합의 문항에서 마지막인 6항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5항까지는 구체적이며 촌각을 다퉈 해결해야하는 사항들이고 6항은 광범위하고 비교적 시간을 갖고 진행할 사항이다.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에는 문화의 교류를 빼 놓을 수 없다.

2015년,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이를 경축하는 문화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중 대표적인 행사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이뤄진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이 행사에서 우리 대통령은 합창단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 노래가 다시 불러지지 않을 날이 언제일까 생각해봤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은 광복 60주년이었다. 그 시절 남북한은 분단 이래 가장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광복 6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조용필의 평양 단독 콘서트’의 연출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1주일간 평양에 머물며 겪고 보았던 경험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판단과 확신을 갖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이들이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너무나 열악한 경제 상황은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공연 스태프와 방송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한 선발대가 전세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설렘 속에 도착한 순안공항의 모습은 상상 밖이었다. 공항 계류장에는 항공기가 1대도 보이지 않았다. 공항청사는 우리의 도착과 함께 불을 밝히고 우리 일행이 청사를 빠져나오자 일제히 소등하고 퇴근을 했다. 명실공이 북한 최대의 국제공항의 모습은 남한의 지방 공항보다도 훨씬 열악한 수준이었다. 1주일에 2번 중국을 오가는 비행편이 유일한 스케줄이라는 것이 북측 안내자의 귀띔이었다.

공항에서 고려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목격한 평양의 거리를 오가는 차량들은 숫자를 셀 정도였고 건물들은 대부분 페인트가 벗겨진 채로 삭막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평양의 모습은 깊은 어둠 속에 묻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가로등과 신호등은 꺼져 있고 아파트의 불빛은 반딧불처럼 드문드문 깜박였다. 심각한 전력난으로 평양의 밤은 일찍 잠들었다.

공연장은 류경 정주영 체육관으로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지어준 체육관이다. 아침 일찍 체육관에 도착한 일행은 인천항을 출발해 원산항으로 선박에 실어 보낸 공연 화물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식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하루를 허송세월한 다음날 새벽, 뜬눈으로 밤을 새던 우리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뚫고 오는 긴 행렬의 차량 불빛을 보고 환호했다.

그런데 체육관으로 들어서는 화물차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 짐들이 해체 되어 6·25전쟁 영화에서나 보았던 ‘골동품’ 트럭에 위태롭게 실려 덜덜거리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트럭 중에는 심지어 시동을 차량 밖에서 손으로 돌려서 거는 형식의 트럭도 있었다.

화물에는 공연 장비 외에도 개석용 의자·형광등·타이어 등의 소위 지원물품과 발전에 필요한 유류·냉장고·생수 등 오지에 가도 공연이 가능한 정도의 짐이 실려 있었다. 물론 이 품목들은 상호간의 협의에 따라 북한이 요구한 물품들이다.

어째든 우여곡절 끝에 공연은 밤샘 작업으로 준비되었고 막은 올랐다. 여성은 모두 한복을 입고 남성은 검은 바지에 흰 셔츠 입은 1만여명의 평양시민들은 난생 처음 듣는 조용필의 노래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느낌이 역력했다. 마지막 앙코르곡인 ‘홀로 아리랑’은 조용한 합창으로 이어지며 잔잔한 감동을 연출했다.

문화의 교류는 당장의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진실한 소통을 유발하고 진정한 이해와 화합의 밑거름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번 합의된 6항의 적극적 실천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안부를 날을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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