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구와 함께 제주-육지 이어주던 ‘관문’
화북포구와 함께 제주-육지 이어주던 ‘관문’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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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이야기따라
<16>유배인들 희망 깃들었던 곳 조함해안로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와 신흥리, 그리고 함덕리를 잇는 해안도로를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조함해안로(약 6482m)’. 조함해안로는 화북포구와 함께, 제주에서 육지로 가기 위한 교통수단이었던 ‘조천포구’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연북정·조천진성 통해 당시 유추 가능

1679년 제주어사로 부임한 이증은 “제주도를 둥그렇게 돌아가며 모두 난석이 포구에 높이솟아 있어 배를 붙일 수 없으나, 이 포구는 뱃길이 평안하고 순탄하다.

또 난석은 포구를 둥그렇게 에워싸 배를 감추기가 아주 좋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조천포구는 육지와 이어주는 ‘통로’로 제격이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조천포구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0년 지방항구로 개항되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예전 그 시절을 전혀 유추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조선시대 정자이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연북정(戀北亭)과 제주도기념물 제68호인 조천진성(朝天鎭城)이 있기 때문이다.

연북정은 1590년(선조 23년) 제주 목사 이옥이 조천진성을 넓히며 성곽 외부에 있던 건물을 진성 위에 옮겨 세워 ‘쌍벽정’으로 부르다, 1599년 목사 성윤문이 건물을 증수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북정은 유배인들이 이 곳에 올라, 북쪽(한양) 바다를 바라보며 언젠간 왕이 자신을 다시 찾아 주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연북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북정은 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약초인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던 서복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 이곳에 도착한 서복은 먼 바닷길을 건너 제주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하늘에 감사하며, 제사를 올리고 조천(朝天)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조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이 이야기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연북정을 바닷쪽으로 두르고 있는 조천진성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조천진성은 제주를 지키던 9진(鎭)의 하나로, 조선 초기부터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군대의 감시초소인 방호소가 있었던 방어의 요충지다.

이어 조천진성은 육지부에서 오가는 경래관(京來官)들의 출입이 잦았던 옛 조천포구 북쪽 해안에 접해있다.

조천진성이 축조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 기록을 보면 1590년 이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천진성은 해발 1~2m의 완만한 경사면에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128m, 높이 2.2∼4.3m, 폭 1.6∼3.1m의 성곽으로 둘려쌓여 있다.

현재 제주시는 (재)제주고고학연구소에 의뢰해, 오는 11월까지 조천진성의 고고학적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시는 터 면적의 10%정도를 시굴 조사해, 당시 건물의 주춧돌 등 유구가 확인되면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다.

 

▲ 조함해안로로 가는 길. 이 길은 화북포구와 함께 제주에서 육지로 가기 위한 교통수단이었던 배를 이용할 수 있는 조천포구가 있던 곳으로 제주로 유배온 이들에게는 본토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던 곳이기도 하다.

1985년 조천읍으로 승격…2006년 제주시로 편입

조천읍의 유례

조천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서복 이야기에서부터,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순한 바람을 기다리는 곳’에서 따왔다는 의견도 있다. 조천읍은 1946년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됐을 당시, 북제주군에 포함됐다.

그러다 1985년 조천읍으로 승격됐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시에 편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천읍에는 어후오름, 넙거리오름, 궤펜이오름, 물찻오름 등 30여개의 오름과 용암동굴 등 11개의 동굴이 분포하고 있다.

조천읍은 신촌리, 조천리 등 현재 10개의 행정리를 이루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감귤이다. 지난 5월말 기준 조천읍 인구는 2만1023명으로 집계됐다.

조천읍의 볼거리로 비석거리, 만세동산, 제주항일기념관, 북촌리 선사유적지 등이 있다. 조천읍에는 4.3유적지 중 한 곳인 낙선동성이 있다.

낙선동성은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조천읍 선흘리가 불에 타버리자, 1949년 마을에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쌓은 성이다.

현재 성의 절반 정도가 원형을 유지해 축성기법과 실태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현재 이곳을 포함한 6곳을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대상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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