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골동품·가짜 와인 ‘돈만 되면’ 뭐든 만든다
위폐·골동품·가짜 와인 ‘돈만 되면’ 뭐든 만든다
  • 제주매일
  • 승인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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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호동의 차이나스토리 < 14 > ‘짝퉁의 천국’ 중국Ⅱ
▲ 중국에서는 돈이 된다 싶으면 화폐·골동품·와인할 것 없이 가짜가 만들어진다. 사진은 중국 화폐인 위안화(왼쪽)와 1690년대 침몰한 중국 화물선에서 인양된 도자기 유물.

비정상인 물건의 지존은 무엇일까? 돈이다.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돈을 만들어 낸다면 굳이 가짜 물건을 만들지 않아도 될 일 아니겠는가. 돈을 만들어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거스름까지 챙길 수 있다면 더 이상의 효율적인 경제 활동이 있을 수 없다.

중국에 어느 정도 기간을 생활했던 많은 외국인들의 중국 생활 경험담 앞 순위에 드는 것이 바로 ‘인민폐의 배신’이다. 생활 속에서 위폐로 인해 처해지는 당혹스럽고 난감한 경험이 중국인들에게는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과거 수십 년 전 중국 대륙에서 만주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과 있었던 ‘위폐전쟁’ 시절에 비하면 지금 수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 가짜·복제·모조·모사·유사 등의 단어가 모두 동원되는 곳이 골동품 시장이다. 한국인들도 한 때 새로 열린 나라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초창기 틈을 타 횡재를 하려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이 바로 골동품이다.

새로 세상에 나온 중국은 무엇인가 노다지와 같은 많은 기회들이 여기 저기 숨겨져 있을 듯한 강한 기대감을 갖게 해 준 미지의 시장이었다. 용감한 한국인들이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한껏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 나섰던 것이 바로 중국의 골동품들이었다.

만약 중국 시골집 어느 농부로부터 제대로의 가치도 모르는 채 소장했을 수도 있을 귀한 골동품을 값싸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는가?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채 고가구와 그림, 도자기와 같은 중국 골동품을 수 없이 사서 날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과연 20~30년 전 시골 골동품의 진위 감정은 제대로 했는지? 어떻게 믿고 구입하였나 하는 것이다. 그 오래 전에 누가 어떻게 진위를 감별했고 그 결과를 담보 받으며 거래가 이루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1949년 이후 중국의 골동품 시장은 완전히 사라졌으니 오랜 시간 동안 문물을 감별할 전문가도 양성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야 비로소 문물과 관련된 법률이 지정됐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이전의 문물은 시장에서의 매매를 금지하고 이후의 문물 중에서는 조건에 부합되는 것들만 시장 교역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건륭제 이전 것이라며 시장에 나온 물건은 가짜가 대부분일 것이고 진짜라 하더라도 이를 소유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위법이다. 그 후로는 문물감정위원회와 같은 전문 조직이 생겨 본격적인 관리가 시작됐으나 때 늦은 조치로 잃어버리고 소멸된 보물이며 문화재들이 수가 엄청났다.

최근 생활의 향상과 함께 문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장은 다시 생겨났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소장과 복고의 여유를 가지면서 다른 나라들처럼 전문가들이 출연하는 골동품 감정 TV프로그램도 여럿이 생겨났다. 넓고 오래된 나라라 소재가 무궁무진할 테니 장수하기에는 딱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중국 골동품 전문가임을 칭하는 사람들이 밝히는 사실은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골동품을 비롯한 여러 문물의 진위나 연대를 판단하는 감정(鑑定)시장이 중국에서 없어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과거전문가들이 혁명의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제자를 둘 기회도 없었고 시장의 단절이 지속된 상황에서 정확하게 감정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실력을 그대로 품고 남아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전한다.

심지어는 공공박물관들에도 제대로 감별되지 않은 가짜들이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시대의 수요에 따라 감정시장도 다시 생겨났지만 부작용도 많다. TV고발 프로그램에서는, 문물 감정회사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가짜 유명화가의 그림이 진품이 되기도 하고, 노점상에서 몇만원에 구입한 도자기가 수천만원짜리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

새로운 중국으로 변신해 가면서 가졌던 여러 변혁과 단절의 시간들은 중국 전통 문물의 고증에 대한 의문까지도 품게 한다. 비정상 제품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가의 품종에서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와인도 한 종류인데 짝퉁보다는 가짜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중국의 새로워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게 돈 버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것이 가짜 와인 장사다. 가짜 백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성이 높은 아이템이라 유행이고 특별한 이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는 더 호황일 듯하다. 무엇이든 돈만 된다 싶으면 바로 짝퉁과 가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중국 부유층에서 선호하는 프랑스의 어느 브랜드의 와인은 중국이 연간 수입하는 양보다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양이 훨씬 더 많다 한다. 답은 뻔해 보인다. 와인은 중국에서 가짜를 만들기도 장사하기에도 정말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짝퉁 권하는 사회 분위기는 중국인들이 해외를 가게 되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너도 나도 엄청난 양의 쇼핑을 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가 된다. 외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그리 높은가, 아니면 외국 제품들이 중국 내 제품에 비해 보편적으로 싼 것일까.

중국에는 이미 부족한 물건이 없는 세상이 됐는데 왜 해외 쇼핑에 그리 열광할까. 이는 중국 내 물가가 다소 비싼 이유도 있지만 어디에서도 활개 치는 짝퉁들과도 관계가 깊다. 중국인들은 고급 백화점에서 공항 면세점까지 물건의 진위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의 쇼핑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신뢰할 수도 있어 구매량은 자꾸 늘어난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짝퉁의 시대를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만들어진 쇼핑 문화의 배경이다.

 

1940년대 초 중국 국민당-일본 ‘위폐전쟁’도 한바탕

중국 대륙에 위폐가 만연한 때가 있었다. 1940년대 초 중국 국민당 정부와 일본 간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쟁 통에서 한 바탕 ‘위폐전쟁’도 벌어진 것이다.

전쟁이 가속화되고 장기화되면서 일본은 중국의 경제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대량의 위폐를 유통시킬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연구를 하던 중 의외의 곳에서 ‘희소식’을 접한다. 1940년대 초 독일 전함이 엄청난 양의 중국 화폐 반제품-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는 기술상의 문제로 자국 화폐를 미국에서 가공했다-을 운반하던 미국 상선을 공격, 이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얻게 된 것이다. ‘반가운’ 전리품은 동맹국인 일본이 유상으로 넘겨받아 위폐 제조법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1945년 패전 이전 몇 년 동안 엄청난 양의 위조지폐를 발행, 중국 대륙에 유통시킨다. 일본은 위폐를 사용, 국민당 정부가 통치하고 있던 상하이 등지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고 거스름돈까지 챙기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발행했던 위폐의 액면가가 당시 중국 국민당이 사용했던 2~3년간의 군비 규모와 비슷하다고 하니 천문학적 규모의 위폐가 초래했을 시장의 혼란 정도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당 정부 역시 일본의 만주국 지폐를 대량 위조, 같은 방법으로 유통시키는 맞불 작전에 나섰다. 일본의 전면적인 시장 혼란 작전에 대해 국민당 정부도 ‘가짜에는 가짜(以假對假)’로 대처한다는 전술을 펼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총칭(重慶)에 공장을 건립하고 미국으로부터 종이와 설비를 구입하고 최고 수준의 화폐 기술자들을 모집해 밤낮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마침내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의 각종 일본 지폐와 군표(軍票)와 구분이 어려운 ‘진짜 같은’ 가짜들을 발행하게 된다. 일본 전문가들도 구별이 어려웠다는 가짜들을 통해 대량의 황금과 면사·옷감 등을 구입하며 일본 점령지 지역 시장을 혼란시켜켰다.

일본의 위폐공작은 그러나 국민당의 화폐발행량이 7년새 100배나 늘어나면서 중국 화폐의 인플레이션이 극심, 소기의 성가를 거두지 못하고 만다. 반면 국민당의 작전은 성공, 일본군 점령지역의 통화량의 급격한 팽창을 초래하면서 금융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화폐 혼란의 시기는 일본의 패전에 이어 1948년 중국 공산당에 의한 최초의 인민폐 발행과 함께 안정을 찾게 된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이 ‘비벼보고 문질러 보고 비춰도 보고 심지어는 귀퉁이를 살짝 찢어도 보는’ 위폐 감별 습관은 아마 그 시기에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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