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탐방 첫날,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경 숙소를 나섰다. 약 5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탐방로에 다다를 수 있기에 서둘러 출발했다. 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은 넓은 옥수수 밭과 드문드문 들어선 시골마을의 모습뿐이다. 제주 섬 어디에서건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산언저리에 다가가서도 백두산의 모습은 쉬이 볼 수 없었다. 위용을 꽁꽁 감춘 채 은둔자처럼 가려져 있다.

매표소 입구에 다다르니 커다랗게 장백산(長白山)이라 붙어있다. 천지주변으로 하얀 조면암 부석층(pumice)이 기다랗게 쌓여있어 백두산·장백산·백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백두산의 서쪽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다. 전용셔틀버스를 타고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간 후 마지막 1441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야 천지와 만날 수 있다.
높이 약 2470m(단, 백두산 최고봉의 높이는 2750m)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보면 이정도 계단을 걷는 수고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하지만 연로하신 분들은 힘에 부친 듯 가마에 의지해 오르곤 한다. 그러나 비용 흥정을 정확히 해서 나중에 시비 붙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드디어 천지다. 헉헉거리는 숨을 다 몰아쉬기도 전에 탄성이 먼저 나온다. 고요한 호수처럼 칼데라 호의 푸른 물이 구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색을 내며 비추고 있다.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소리와 탄성이 터진다. 청석봉·용문봉·천문봉 그리고 동남쪽의 장군봉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비록 경계비를 기점으로 기다란 줄을 친 채 출입을 통제하며 북한과 중국으로 나뉜 백두산이지만 천지의 물은 하나였다.
1000년 전 엄청난 위력의 화산폭발로 만들어낸 천지칼데라지만 그 깊고 그윽한 적막 속에서 지금 이곳이 활화산이란 상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지구 속 마그마가 분출 한다면 이 곳 천지의 모습은 물론 주변국가의 정치적 상황까지 변할 것이다. 한때 발해의 멸망이유가 백두산 화산폭발 때문이라는 설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경계로 나뉘어 갈 수 없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49m)을 멀리서 나마 바라보며 하나 된 천지와 같이 하나가 될 우리나라를 그려본다.
(글=조미영 여행작가, 사진=제주지질연구소(소장 강순석) 탐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