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亂’과 롯데그룹의 ‘민낯’
‘왕자의 亂’과 롯데그룹의 ‘민낯’
  • 김계춘
  • 승인 2015.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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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골육상쟁 부른
왕위 계승권 싸움 ‘왕자의 亂’
오늘날 재벌가에서 이어져

롯데家 두 형제 경영권 다툼
度 넘어 ‘막장 드라마’ 방불
‘민낯’ 드러낸 롯데그룹 치명타

원래 ‘왕자의 난(亂)’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창업 도상에서 일어난,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두 차례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일컫는 말이었다.

제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신의왕후 한씨 소생과 당시 세자였던 이방석 등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 및 개국공신이던 정도전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이방원 일파는 방석과 방번은 물론 정도전과 남은 등을 살해하고 태조의 둘째 아들인 방과를 정종(定宗)으로 옹립했다.

타의에 의해 왕위에 오른 정종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실권(實權)은 정안군 이방원에게 있었다. 왕세자를 노리던 방간이 정종 2년에 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이다. 무력(武力)에서 앞섰던 방원이 이를 제압하고 기어코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 받아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태종(太宗)이다.

한번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함흥차사(咸興差使)’란 말도 이때 나왔다. 태종이 함흥에 있는 아버지를 환궁시키려 여러 차사를 보냈으나 거의 다 돌아오지 못했다.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위를 차지한 방원에 대한 태조 이성계의 분노의 표시였다.

최근 롯데가(家) ‘왕자의 난’으로 세상이 몹시 시끄럽다. 그룹 경영권을 에워싼 두 형제의 싸움이 그 도(度)를 넘어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물론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왕자의 난’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와 두산, 효성 등 대부분의 그룹에서 ‘왕자의 난’이 발생하긴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롯데그룹 두 형제의 갈등은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계 구도에서 밀리면서 시작됐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일본롯데에서 갖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다. 이후 국내 일부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이로써 ‘신동빈 원톱 체제’가 굳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쟁(戰爭)의 시작이었다.

절치부심하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마침내 반격의 칼을 빼들었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으로 모시고 가 “롯데홀딩스 이사 전원(6명)을 해임한다”고 명령토록 유도한 것. 그 속엔 신동빈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등도 포함됐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그러나 이 쿠데타는 ‘1일 천하(天下)’로 끝났다. 신동빈 회장측이 다음 날인 28일 이사회를 열고 이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정식 결의를 거치지 않은 신 총괄회장의 해임 명령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사회는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물러나게 한 뒤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창업(創業) 회장이 아들에게 해임당하는 사태는 국내 재벌사(財閥史)에서 초유의 일이다.

롯데가 형제끼리 벌이는 ‘왕자의 난’이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접어들면서 그룹 안팎은 물론 재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향후 전개될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는 제3라운드 격으로, 그야말로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진검(眞劍) 승부가 될 전망이다.

현재 싸움의 양상은 ‘신동빈’ 대 ‘반(反) 신동빈’으로 압축됐다. 주총을 앞둬 신동빈 반대세력은 신 총괄회장을 내세워 “신동빈을 한국회장에 임명한 적이 없다”고 밝히는 등 ‘신동빈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반면에 신동빈측은 ‘세키가하라(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통일을 완성한 전투)식 결전’을 준비 중이다. 주총(株總)을 통해 일격에 상황을 끝내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두 형제간 싸움에서 그 누가 승리하더라도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롯데그룹이 입을 타격은 실로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은 유통과 호텔, 관광과 제과 등 주력 사업들이 대부분 소비재 산업이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사태로 ‘일본기업이냐, 한국기업이냐’란 최악의 정체성(正體性) 논란 등으로 번지고 있어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거늘, 유독 재벌가에서 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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