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제주의 수생식물

최근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숲속과 들판 여기저기에 물웅덩이들이 평소보다 많이 생겨나, 중산간 방목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경관을 볼 수 있다. 맑은 하늘과 물에 반영되는 수생식물, 그리고 소나 말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생각한다. 이런 습지의 풍경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수생식물은 제주지역 식물다양성의 한축이 돼왔으며, 앞으로도 제주식물을 풍요롭게 해줄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제주의 습지 해안가에서 백록담까지
제주도에 분포하는 식물의 생활형(Life form)을 분석해 보면 수생식물이 약 10%가 조금 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남한에 분포하는 식물이나 북한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식물에서 수생식물의 비율이 약 1.4 ∼ 2.3%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제주지역의 수생식물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냥 수생식물이 많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좀 더 생각해 보면 그만큼 수생식물이 자랄 수 있는 다양한 습지들이 많다는 것으로 의미한다. 다시말해 우리 제주도는 해안에서부터 백록담까지 다양한 습지들이 분포하고 있어 수생식물이 살아가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생식물은 어차피 물이 고이거나 흐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자라기 때문에 다른 환경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수생식물의 다양성도 다른 식물의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여러 형태의 수생환경이 수반돼야 한다. 물이 단순하게 고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량이나 유속, 수심 등 다양한 수환경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수생식물의 분포경향은 물의 깊이에 따라 차이 나게 된다.
얕은 물가에 잘 적응된 식물이 있는가 하면, 보다 더 깊은 곳에 자라서 일시적인 수량의 변화에도 장기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며, 항상 물이 고여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식물 등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송이고랭이 마을인근 오래된 습지서 관찰
중산간지역이나 마을인근 오래된 습지에서 자주 관찰되는 수생식물 중에 '송이고랭이'라고 있다. 비교적 일정한 규모로 무리를 지어 자라며 그냥 멀리서 보면 작은 막대같은 것들이 얕은 물속에 빼곡하게 솟아있는 정도로 만 느껴지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면 수생식물만이 가지는 아주 재미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생식물은 대부분 줄기 속이 공동처럼 된 통기조직이 발달한다. 구획이 나눠져 있는 통기조직에는 공기들로 채워져 있어 식물의 생장활동에 효율적으로 이용되며, 물속에서 나름대로의 유연성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게 된다.

송이고랭이의 줄기속도 이런 통기조직이 있으며, 줄기의 외부모습은 날카로울 정도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 다른 수생식물과는 구별이 된다. 대부분의 수생식물들의 줄기가 원형이거나 간혹 사각형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꽃이 필 때는 더욱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송이고랭이의 삼각형 줄기의 한면에서 살짝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꽃이 피어나오기 때문이다. 줄기의 끝에서 꽃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줄기의 측면에서 달리는 모습을 처음 보는 이에게는 너무나도 신기한 모습일 것이다.
송이고랭이는 제주도 중산간 연못의 우점종 중 하나로 마을 주변의 좀 오래된 습지와 중산간 방목지대의 습지와 물영아리 같은 화구호습지 등에도 자란다. 이정도면 이 송이고랭이군락은 자연연못의 대표적인 수생식물군락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세모고랭이 줄기 측면에서 개화
흥미로운 건 송이고랭이와 아주 닮은 식물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똑 같이 줄기가 날카로운 삼각형이며, 꽃도 줄기의 측면에서 나오는 특징이 같은 ‘세모고랭이’라는 수생식물이다. 두 종류를 구분하려면 난감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꽃이 펴도 구분이 될까 말까 하는데, 꽃이 피기 전까지는 거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두 종류가 습지에서 자라는 모습은 조금 차이가 있으며, 특히 꽃이 피면 구분하는 것이 보다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세모고랭이도 땅속줄기로 뻗어나가며 자라는데, 송이고랭이처럼 일정규모로 뭉쳐 자라는 습성이 없이 아주 넓게 일정한 간격으로 퍼져나가며 자란다. 그래서 두 종류가 자생지에서 자라는 광경을 멀리서 보면, 송이고랭이는 일정한 규모로 무리를 지어 총총총 자라고 있고, 세모고랭이는 넓은 면적에 펼쳐져 있는 모습으로도 구분이 가능하게 된다. 특히 꽃이 피면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데 송이고랭이는 줄기의 측면에서 나온 꽃송이에 꽃줄기가 거의 없어 줄기에 부착된 모습이지만 세모고랭이는 줄기 측면에서 나온 꽃들이 자세히 보면 꽃줄기를 가지고 있어 명확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두 종류의 분포를 보면 같이 자라는 경우도 가끔씩 있지만, 대부분 연못에서는 송이고랭이가 흔하게 관찰되는데 중산간 방목지역에 위치한 규모가 작고 수량의 변동도 많은 습지에서 흔하게 자라는 특징이 있다. 반면 세모고랭이는 물영아리오름처럼 자연습지의 규모가 크고 수량이 그래도 좀 일정하게 유지가 되는 경우에 우점하며 자라는 경향이 있다. 습지환경의 차이가 만들어준 결과로 제주도의 이런 습지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름 잘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습지와 수생식물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은 접더라도 방목이 성행해왔던 제주지역의 습지는 식물다양성의 근간을 형성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오래 전부터 사람이나 가축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에게도 휴식처와 같은 역할을 해주던 공간이다. 지금 제주도가 자랑하는 높은 식물다양성도 이러한 습지들이 있어 가능한 부분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의 습지관리도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