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열린 제주관광마케팅협의회 회의는 도의회 성토장(聲討場)을 방불케 했다. 심지어 “예산삭감 사태는 메르스에 이은 2차 폭격을 맞은 거나 다름없다”며 그 책임을 도의회에 전가(轉嫁)했다. 과연 그럴까. 이는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될 문제다.
제주자치도는 도의회의 예산 증액과 관련 ‘근거’가 필요하다며 사업설명서 제출을 요구했다. 의원들은 “도의회 구성 이후 처음”이라는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모든 증액사업에 설명서를 제출했다. 일각에서 “집행부가 예산심의까지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메르스 극복 관광마케팅 예산’ 60억원을 편성하면서 고작 1페이지 분량의 사업설명서만 첨부했다. 상세하게 작성해야 하는 예산에 대한 산출내역도 단 네 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 사태 위기 극복(克服)을 위한 해외 메가 캠페인(25억원), 직항 인센티브 등 국내외 업계 지원(12억원) 식이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 설명이 없었다. 더욱이 해당 예산은 기존의 대행사업비 대신 제주관광공사 경상전출금으로 집행할 계획이었다. 대행사업비는 사후(事後) 통제가 가능하지만 출연금 형태로 지원되는 예산은 정산의무도 없다. “가공용 감귤 수매가 지원(약 50억원)은 아끼면서 사용계획과 정산(精算)의무도 없는 불투명한 예산을 편성해도 되느냐”는 도의원들의 비판이 나온 이유다.
메르스 사태로 극심하게 침체된 제주관광을 되살리려면 그에 걸맞는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선 도의원들의 지적처럼 구체적인 사업설명과 집행계획이 있어야 했다. 물론 이번 예산 삭감(削減)과 관련 의원들의 ‘감정’이 개입됐다는 시각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집행부의 ‘부동의’ 입장 표명에 따른 반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발목 잡는 국회’를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르스 극복 예산’이 그토록 절실했다면 원희룡 지사가 직접 나서 도의회의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고태민 의원이 왜 원 지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며 자진 사퇴(辭退) 선언까지 하고 나서겠는가. ‘원칙’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