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드가 타는 엘리베이터 맞은 편 벽에는 묘하게 생긴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노려보고 있다. 그 얼굴 아래에는 ‘빅 브라더가 그대를 감시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철저한 감시 속에서 생활하는 고통을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지금 우리는 점점 더 감시의 눈들이 많아지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각종 파파라치의 양산과 영상장비의 발전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생활에 대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인 감시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조지 오웰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의 필명이다. 그는 1903년 하급 관리의 아들로 벵갈에서 태어났다. 인도에서 출생했으나 얼마 안 되어 영국으로 돌아갔고 1911년 수업료 감액의 조건으로 사립 기숙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곳에서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 감을 맛보았다. 장학금으로 이튼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6년간 미얀마에서 제국경찰로 근무하면서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고 사직했다.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의 부랑자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였고 파리로 가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였다. 1935년부터 작품으로 수입을 얻기 시작하였고 1936년에 결혼하였다. 1944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동물농장 (Animal Farm)’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결핵으로 입원 중 1949년에 걸작 ‘1984년(Nineteen Eighty Four)’ 을 썼다.
이것은 국가의 전체주의적 경향과 기술의 발전으로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게 되는 현대 사회의 미래를 예견한 소설이다. ‘1984년’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부분 조지오웰이 예견한 현상과 일치하는 것도 있다.
국민편의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개발되고 발전해온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 인간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정도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어느 젊은 아가씨가 애완견을 데리고 지하철에 탔다가 이 애완견이 당황한 나머지 변을 보고 말았는데, 그 아가씨가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주변 승객들이 아가씨에게 애완견의 변을 치우라고 했더니 ‘웬 참견이세요!’하고 다음 역에서 훌쩍 내려버렸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애완견 변을 치우는 전 과정을 누군가가 사진을 찍은 후에 인터넷에 올렸고 ‘그녀의 신상을 밝히자’하면서 비슷한 사진이나 비슷한 신상, 사실이 정확히 확인 안 된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행위가 여러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다른 한 예로 공무원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여자와 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었다’고 전화를 걸자 협박자에게 돈을 입금한 사건이 있었다.
제주에서도 그런 피해를 당한 공무원이 있었다고 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사생활이 남에게 노출되었으리라는 두려움을 갖고 생활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잘못된 행위를 했을 경우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 수위가 있는데, 마구잡이 신상정보의 공개는 개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이다. 국가에서 개인의 사적인 영역과 공간은 보호해 주는 게 법규로 보장 돼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 정보는 점점 더 침해를 받는 듯이 보인다. 어떤 전제 정치가 빅 브라더가 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미디어와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빅 브라더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을 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