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 ‘짝퉁의 천국’ 중국

중국에 짝퉁 제품이 많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오래된 사실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종류도 많고 모방을 해내는 정교한 손재주는 놀라울 따름이다. 창의까지 더해져 만들어 내는 출중한 아이디어에는 찬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짝퉁은, 중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을 난감하게도 하고 잠시 행복하게도 하고 넉넉하게도 하고 아쉬운 느낌도 들게 하는, 어디에도 늘 있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어떤 물건들은 짝퉁이라 불러야 할지 단순한 가짜랄지, 모조품인지 복제품인지 아니면 유사품인가 위조품인가 도대체 어느 단어로 설명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문양이 색색이 박힌 얼룩 강아지가 예뻐서 얼른 사다가 목욕을 시키다 보니 물감이 빠져 그냥 허연 민둥개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 강아지는 도대체 가짜와 짝퉁?유사품?위조품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사람이 많아서인지 중국은 비정상의 물건도 많지만 별난 동물까지도 있는 나라다. 중국에는 어떤 비정상의 물건들이 있을까?
진짜의 효용 가치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소비자를 기만하고 해롭게만 하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악으로서의 가짜는 주로 먹거리에 많다. 눈을 멀게 하는 술, 젖먹이 영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분유, 녹말가루로 만든 샥스핀, 가짜라고 증명하기가 진짜 어려운 각종 보신품, 한약 과립기로 빚어 염색한 진흙 콩 등등 종류는 셀 수도 없다.
진품과 정말 비슷하게 재현해 낸 물건이라면 소위 짝퉁으로 표현되는 ‘모조품’이라는 단어가 가장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이런 제품은 생명에 지장을 준다거나 아예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저렴한 가격을 지불했을 소비자들이 손해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진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로서는 커다란 골칫거리다.
정부도 단속을 한다지만 이를 개의치 않는 듯 대부분 중국 대도시에는 대형 짝퉁 판매시장이 활성화돼 있고 종류와 규모는 놀랄 정도다. 그 곳은 맘만 먹으면 소유할 수 있는 명품이 주는 풍요로움에 잠시나마 행복에 빠지는 중국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장사에는 일가견이 있는 중국 상인들과 만국공통 거래 도우미인 전자계산기를 번갈아 두들기며 벌이는 한판 진지한 흥정이 끝나면 짝퉁이었던 핸드백이며 만년필·시계 등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그만의 명품이 된다. 복제품은 모양도 기능도 효능도 거의 똑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점이 크다. 그래서 중국의 복제품 남발과 남용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바로 한류 스타들이다.
초창기 한류의 급물살을 만들어 내며 인지도를 한껏 올리면서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착륙하는 듯 했지만 라이브 콘서트 외의 음반 사업은 불법 복제품 기승으로 제대로 장사도 하지 못했다. 영화도 복제 CD들이 기승을 부렸으니 라이선스 판매도 영화관 입장 수입 모두 지지부진했다. 한류 초창기는 소문만 무성했던 잔치처럼 돈벌이에는 아쉬움이 컸다. 모두 비정상의 물건 때문이었다.
모든 중국의 비정상 물건들이 가진 의미를 집대성해 종결지었다고 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값싸고 성능 좋은 모조품의 대명사가 된 ‘산짜이(山寨)’가 바로 그 것이다. 일단 산짜이는 진품의 모든 것들을 통째로 닮아가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창의를 더하고 탁마를 거치고 나면 결코 조악하지 않은, 짝퉁이라고만 하기에는 아까운 물건이 되기도 한다.
‘산채(山寨)’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듣게 되면 대번에 저 깊은 산 속에 있을 것 같은 산적 소굴의 의미가 떠오른다. 수호전(水滸傳)에도 등장하는 단어로서, 옛날에는 한국이나 중국 모두 사회와 동떨어져 공식적인 체제의 간섭을 피해 생활하는 반사회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음은 같다.
산짜이가 가지는 여러 함의를 정리해 보면 ‘사회 규범을 피해 형성된 어느 일정한 동네에서 생산하여 사회에 유통시키는 진품에 버금가거나 때로는 초월하는 수준의 성능까지 가졌지만 저렴한 가격의 모조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주로 중국 남부 해안과 가까운 지역에 밀집된 여러 공장들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데 평가도 갈린다.
부도덕한 짝퉁 제품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제품을 참고하여 더 좋게 값싸게 만든 효율적인 문화의 산물이라는 예찬론자도 있다. 여타 나라들의 반응은 강하게 비판도 하지만 내심으로는 경계의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산짜이를 찬양하는 중국인들은 앞서 개발된 물품을 모방, 최소한 같은 성능이거나 그보다 더 알차고도 저렴한 제조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도 이해하려 한다. 모방과 유사라는 단어 대신 참고와 응용이라는 의미를 부각시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의지도 있다.
모든 새로운 물건들이 태초의 시작은 있었으나 다시 참고되고 창조를 더해 더 좋게 더 편하게 더 저렴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또 진리로 믿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국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소화한 다음 타고난 손재주에 눈썰미까지 더하고 거기에 다시 창조성을 더해 가며 그들만의 물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어떤 것들은 이미 세계 최고·최대·최다 등의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의 성과를 순식간에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잘 갖추고 거기에 디테일을 더해 중국식 제품과 서비스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중 국의 기회는 이웃나라들이 더욱 긴장해야 할 현실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이 싼짜이는 바로 중국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또 하나 유의미한 단어이기도 하고 외국 기업들로서는 산짜이 제품들의 본격적 진화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중국의 산짜이 제품들은 무시하거나 시간이 지난다고 사리지지 않을 만큼의 생명력을 이미 지니고 있다. 기술을 앞서 가는 유명 브랜드들로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겠지만 산짜이로부터 생명력을 얻은 중국 기업들이 세월 따라 하나 둘씩 어쩔 수 없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강자들의 모습들로 나타날 것이다. 세계소비자의 날인 매년 3월15일은 중국에서도 같은 기념일이지만 한 가지 더 가짜 퇴치의 날(打假日)을 겸한다. 한편에서는 쉼 없이 만들어 내고 한편에서는 기념일까지 정해 단속하고 있는 것이 또 중국의 모습이다. <전 이노션월드와이드 중국본부장>

‘짝퉁 마을’까지 만드는 중국인…오스트리아 할쉬타트 모방한 주택단지 건설
규모로 따져 보면 최대 짝퉁은 중국 남부 광둥성 있는 한 마을 전체다. 이 ‘짝퉁 마을’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관이 빼어난 마을 ‘할쉬타트(사진)’를 그대로 모방해서 주택 단지를 건설한 것이다. 짝퉁 마을은 할쉬타트 앞에 있는 호수까지 본 따서 실제 크기의 50분의 1로 축소한 인공호수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 조성된 마을은 화제도 낳았지만 ‘오리지널’ 마을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는 등 논쟁도 많았다. 최종적으로는 중국의 짝퉁 마을은, 짝퉁마을에 대한 관심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오리지널 마을까지 찾아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시시비비는 굳이 가리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중국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고 그 것을 비즈니스로 연결한 또 하나의 예다. 정말 어느 날인가, 남중국해의 한 섬이 하와이가 되고 서역 사막에 두바이와 같은 도시가 건설되고 티베트의 산애(山涯)에는 페트라가, 운남성의 어느 산정 높은 곳에는 마추픽추가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중국 남부 도시에 가면 세계 각국의 상징적인 문화재를 소형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창’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늘 엄청난 사람들이 몰린다. 중국은 국내에서도 해외여행 맛을 즐기는 시대도 만들어 낼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땅이 넓어서인지 대륙에서는 상상치 못하는 일이 정말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