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 지표수·복류수 부족, 하상용천 결핍 때문
‘건천’ 지표수·복류수 부족, 하상용천 결핍 때문
  • 제주매일
  • 승인 2015.0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 이야기
⑮제주 하천 ‘건천(乾川)’의 의미
▲ 왼쪽은 한라산 Y계곡에서 발원, 붉은오름 서쪽 자락을 지나 외도동 바닷가로 흘러드는 광령천. 평상시에는 건천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다. 오른쪽은 많은 비가 내리는 날 5·16도로 동수교에서 바라본 서중천.

제주의 하천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발달한다. 제주도의 지표에 넓게 분포하는 암석인 현무암은 투수력이 좋은 지질구조가 특징이다. 지표수는 지하로 스며든다.

이런 화산섬에서 대부분의 용수(用水)는 지하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표에 토양층이 빈약한 원인도 이에 한몫을 한다. 지표에서 물을 빨아들여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토양이기 때문이다. 지하수는 지하 깊은 곳의 암석층 내에 높은 압력으로 저장된다.

해발고도에 비례하여 대부분의 지하수가 땅속 깊은 곳인 해수면 깊이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지하수는 자연적으로 해안선 부근에서 솟아나온다. 가장 자연적이고 깨끗한 지하수의 형태가 해안용천수다.

이런 곳에 하천은 왜 필요했을까? 제주에는 왜 육지와 같은 강이 없는 것일까? 하천 발원지인 백록담의 해발고도 약 2㎞를 극복하고 바닷가의 하구까지의 거리가 약 10여㎞의 하천에서 과연 상시 물이 흐르는 강이 형성될 수 있을까? 만약 이런 곳에 상시 물이 흐르는 하천이 형성됐다고 한다면 이는 연속적인 폭포밖에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제주의 하천은 육지부의 하천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을 이루고 있는 육지부의 하천 수로와 비교한다면 발원지 부근의 산악지역에 형성된 계곡과 같은 곳으로 간주해야할 것이다. 그러니까 육지의 강들은 대부분 수백 ㎞의 연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낙동강을 보면 발원지인 태백산에서 제주의 하천과 같이 흘러드는 물이 저지대의 평야에서 여러 지류들이 합쳐진 후에 비로소 큰 강으로 발달되어 간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이 계곡 지류들이 합쳐지는 지점이 바로 ‘바다’다. 이것이 육지의 강과 제주의 하천이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갖게 된 이유다. 그런데 한동안 행정에서는 하천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하천 바닥의 아름다운 암석을 부수는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이는 제주의 하천과 육지의 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망각한 결과로 잘못된 토목공사의 전형이다. 제주의 자연적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일방적인 행정으로 인해 우리는 오랜 세월 자연스레 만들어진 건천의 아름다움을 잃는 우를 범한 것이다.

제주도의 현무암질 용암류에 잘 발달된 절리와 매우 얇은 용암류 단위들은 지표수의 높은 투수력과 함께 지하에서 지하수의 수직 및 수평방향의 빠른 흐름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지표수의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이는 반대로 지표수가 지하수로의 함양이 급속하며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도의 주요 수원인 지하수는 이러한 지질적인 요인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고지대에서의 용천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제주의 특징이다. 중산간 마을에서 용출하는 샘들은 대부분이 상위 지하수다.

상위 지하수는 기저 지하수에 비해 해발고도가 높은 고지대에서 국부적으로 분포하는 지하수의 형태다. 제주도 지하에서 암석층인 용암류는 대개 용암이 연속적으로 흘러 쌓이면서 층을 이루게 되는데 마치 시루떡과 같은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중산간지역이나 고지대에서 지하로 함양되는 지하수는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에 수평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불투수층인 암석층을 만나면 부분적으로 지표의 틈을 통하여 솟아나온다. 이것이 중산간 지대의 상위 용천이다.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용천수인 영실계곡의 용천, 탐라계곡의 용천 및 돈내코계곡의 용천 등은 실은 현무암질 용암류의 급경사면에 발달된 깊은 절개지인 계곡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도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을 이루고 있는 원인을 하천 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의 특징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 보다는 하천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지표수 및 복류수의 부족과 하상용천의 결핍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현무암의 용암류도 그 내부를 보면 비교적 치밀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현무암의 암석은 물을 투수하지 못한다. 보통 제주의 현무암에 구멍이 많아서 지하로 물이 모두 빠져 버린다고 하는 말은 실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암석에 발달된 절리라고 하는 틈을 통하여 또는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만들어진 ‘숨골’이라고 하는 곳으로 통하여 지하수는 지하로 스며들고 암석층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송이층에 보관된다. 이런 송이층은 공극이 많기 때문에 물을 다량으로 함유할 수 있다.

지하에는 이런 송이층이 시루떡과 같이 연속적으로 분포한다. 중력에 의해 지하로 내려간 지하수는 지하 지층의 압력을 받아 높은 압력으로 눌려져 있는 형태가 제주에서 지하수가 지하에 저장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지하수는 지하에서 어떤 공간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암석층 속에 강한 압력으로 저장돼 있는 것이다. 이 지하수층은 해수면에서 담수층과 해수층이 맞닿는 해안선에서 자연스럽게 솟아 나온다. 이것이 제주의 해안 용천이다.

 

 

사람을 위한 배수로 역할…고지대 빗물 바다 운반 홍수피해 막아

▲ 집중호우 때 장관을 연출하는 엉또폭포.

제주에서 하천이 범람하는 광경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엉또폭포’다. 다른 건천에서도 비가 많이 오면 강물처럼 물이 흐르는 현상이 종종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을 제주에서는 ‘내가 친다’ 또는 ‘내가 터졌다’라고 말한다.

원인은 우선 한라산 고지대의 엄청난 강우량이다. 한라산 고지대의 진달래밭이나 윗세오름 대피소에 최근 자동기상관측 장비를 설치해 연중 강우량을 측정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장마철이나 태풍시에 한라산 고지대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1일 강우량이 1000㎜을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엄청난 양의 강우가 하루 동안에 내린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이렇게 일시적으로 퍼붓는 많은 양의 빗물의 이동경로이다.

한라산 고지대인 그곳에는 토양이 거의 없다. 약 30㎝ 두께의 박토로 되어 있다. 현무암의 ‘빌레’ 위를 얇은 토양층이 덮고 있는 양상이다. 지표면에 떨어진 빗물을 저장하는 곳이 지표의 토양이다.

얇은 토양층을 순식간에 포화시킨 지표수는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가는 실개천과 같은 작은 계곡들을 따라 하천으로 모여든다. 이제 제주의 하천인 건천이 제기능을 발휘할 차례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모여든 엄청난 양의 빗물을 빠른 시간 내에 바다로 이동시키는 통로가 바로 제주의 하천인 건천이다.

엉또폭포는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마른 하천의 길목으로 하천 바닥에 용암류의 선단부가 형성되어 있는 용암폭포다. 이 하천은 한라산속에서 발원한 후 시오름 옆을 통하여 남하하다가 엉또폭포를 거쳐 바다로 흘러든다.

강정천과 이웃한 작은내로서 아끈내라고 부른다. 만약에 제주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하천이 없다면 대부분의 마을이 있는 해안저지대는 홍수로 인한 피해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을 것이다. 결국 제주의 하천인 건천은 집중호우시에 한라산 고지대인 상류에서 형성된 다량의 빗물을 하류인 바다로 급속하게 운반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배수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