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 하는 사회, 그 치유책은
‘욱’ 하는 사회, 그 치유책은
  • 장정애
  • 승인 2015.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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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분노 공화국’ 오명
‘땅콩회항’에 보복운전 등
이기적 횡포적·갑질 분노 만연
 
문제는 ‘목소리 큰놈’ 비속한 인습
분노 조절 자제력 키우기
대화·토론의 민주주의도 배워야

분노지수가 높아져가고 있다.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분노가 없는 사회도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분노지수는 일상의 삶 속에서마저 그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경적을 울리며 추월했다고 보복운전을 일삼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됐다. 이른바 ‘욱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분노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시민은 불의와 부정, 부패에 분노해 1987년의 민주화를 이루어 낸 저력을 지니고 있다. 이 경우 분노는 불의에 저항하고 항의하는 ‘거룩한 분노’라 할 수 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흑인이 물건처럼 거래되는 것을 보면서 거룩한 분노를 느꼈고, 그것은 미국 흑인노예 해방전쟁을 일으키는  동기가 됐다.

이렇듯 우리의 내면에는 불의를 용납하지 못 하는 분노가 있다. 이러한 분노는 사회와 역사개혁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

반면에 이기적인 횡포형 분노가 있다. 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 대한 장애물에 대한 분노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사회의 강자를 자처하는 계층의 ‘갑질 분노’를 넘치도록 목격하고 있다.

교수가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상습적인 폭행을 가하는가 하면, 항공사 CEO가 승무원의 땅콩 접대 방식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항공기를 회항시켜 법의 심판을 받는 웃지 못 할 사태가 있었다. 최근 제주 사회에서는 취객이 노상 방뇨하는 현장을 단속한 경관이 이를 과잉단속이라고 항의하는 동행인들을 ‘도매금으로’ 연행해서 논란을 일으킨 바도 있다.

대한민국이 ‘분노 공화국’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분노분출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 원인에 대해 이제는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무엇이 우리를 욱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 처방은 없는가? 왜 한국의 시민들은 쉽게 분노하며 그러한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인가?

혹자는 규명되지 않은 통설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짜고 매운 음식을 많이 먹고 마늘 같은 강장 음식을 많이 섭취해 피가 뜨거워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와 같은 근거 없는 가설에 무게를 두면 해법 찾기는 더욱 요원해진다. 국민의 분노지수를 잠재우기 위해 전 국민이 식습관을 바꿀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국민은 쉽게 분노하는가? 그리고 쉽게 분노하는 행태가 분명히 인격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우리사회는 쉽게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주도권을 잡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방치되고 말았다.

급기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비속한 인습이 우리 사회를 점령하고 말았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 점령군을 몰아내야 한다. 우리사회의 이기적인 분노가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분노조절장애는 그 치유와 처방을 찾아야 한다.

제주어 표현에 주목할 할 만한 처방이 있다. “부에가 용심 조꼬띠레 감쪄” 이 말의 듯인 즉 슨 “내가 지금 분노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 분노 지수가 상승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분노에 대한 자기 감지 과정을 표현하는 제주어의 탁월성은 우리의 감탄과 자부심을 자아낸다. 동시에 분노 조절에 필요한 자기인식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한 가지 더 효과적인 처방이 있다면 분노를 해소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대화와 토론에서 찾아야 한다. 영국의 시민교육은 학교교육에서부터 토론의 예절과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학교교육에도 이와 같은 토론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영국인들이 분노할 줄 몰라서, 혹은 그들의 인격 수양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분노를 대화와 토론으로 조절하고 소통하는 훈련과 연습이 영국 민주주의의 저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한국의 민주주의도 대화와 토론의 기술과 예절을 익힌 시민들이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제주어에 담겨있는 분노조절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론 자제력을 키우면서 사회적으론 토론의 ‘민주화 기법’을 확산시키는 일을 시작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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