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포구와 함께 육지 연결하는 주요 관문
목사 김정, 선박왕래 지장 선착장 만들어
사람들, 해신사서 용왕에게 배 안전 기원

요즘은 자동차로 제주도의 웬만한 곳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갈 수 있다.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로, 국내에 간다면 보통 1시간이면 도착한다. 옛날 사람들은 제주를 드나들기 위해 유일한 통로인 ‘바닷길’을 이용했다. 조선시대, 조천포구와 화북포구는 육지와 연결하는 주요관문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 제주국제공항과 제주항에 ‘관문’자리를 내주었지만, 이 곳에 가보면 지난 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화북포구가 있는 ‘금산길(약 0.388Km)’과, 제주도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된 해신사가 위치해있는 ‘진북길’(약 0.263Km)이다. 옛 주소로는 화북1동이다.
▲큰짓물 마시기 위해 제주목사 등 화북포구 찾아
제주올레18코스이기도 한 화북포구의 옛 이름은 별도포(別刀浦)라고 한다. 화북포구 인근에 있는 오름 별도봉 북쪽 사면이 깎아 자른 듯 가팔라서 ‘별도’라 부른다는 이야기, 이별을 하는 나루터라는 뜻에서 이 같이 불렸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북포구가 포구로서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 21대 왕인 영조 때부터 라고 한다. 1737년(영조 13년) 제주목사 김정은 화북포구가 수심이 얕고 비좁아 선박왕래의 지장이 많음을 알고 쌀 300석, 1만여명의 인부를 동원해 선착장을 만들었다. 당시 김정은 “이 화북포구는 섬의 목구멍이면서 배에게는 요긴한 나루이나, 포구의 암석이 들쑥날쑥 솟아있고 큰 물결이 찧어댄다(중략)”는 고유문을 쓰기도 했다.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나 판관, 조방장 등은 화북포구에서 솟아나는 ‘큰짓물’을 마시기 위해 이 곳을 찾기도 했단다. 당시 이 곳에 마을 사람들도‘생명수’라 부르며, 중요한 사람이 왔을때 반드시 큰짓물을 대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물놀이를 한다. 큰짓물이 정확한 이름은 아니지만, 사람들로부터 ‘큰이물’, ‘큰질물’, ‘서착물’ 등 다양하게 불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해줍써”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던 사람들은, 바람이 심할 경우 몇날 며칠을 출항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우여곡절 끝에 출발하더라도, 도착할 때 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제를 지냈다. 화북포구 바로 옆에 있는 해신사가 그런 역할을 했다. 제주목사로 있던 한상묵은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화북포구를 지나가는 배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1829년 해신사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로 유배왔던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서 여러 번 제를 지냈다고 한다. 해신사는 1974년 제주도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됐고, 1975년에는 원래 있던 자리가 헐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마을 어부와 해녀들이 제를 지내오다가, 차츰 주민들과 함께 주관하면서 해상안전을 기원했다. 그러다 10여년 전쯤부터 마을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는 유교식 마을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음은 추사 김정희가 유배에서 풀려 육지로 돌아갈 때 쓴 축문이다.
“빛나는 왕의 영험한 뜻은 신 또한 거역 못하리니/ 상서로운 바람 일편 범주에 천리 파란이 잠잠하여다오/탈 없이 잘 건너기는 오직 바다신에 달렸사옵기에/감히 엷은 정성 올리오니 신이여 강림하여 주옵소서”
▲화북1동 유래
화북1동은 화북포구를 중심으로 외부와 교류가 활발해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화북1동은 벳뒷개, 별도리, 화북포 등으로 불리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공북리’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북1동 해안에는 지금도 많은 역사유적이 남아있고, 동남쪽에는 화북주공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리고 남쪽에는 공업단지 등이 있다. 이 곳은 대부분 ‘주거지’이기 때문에, 감귤과 딸기가 약간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북1동에 가보면 해신사 외에도 삼사석(제주도기념물 제4호), 화북진지(제주도기념물 제56호), 화북진성, 비석거리(제주도기념물 제30호), 곤을동환해장성(제주도기념물 제49-1호), 별도환해장성(제주도기념물 제49-2호) 등 많은 문화유산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별도봉과 화북초, 오현중·고 등도 위치해있다. 화북1동에는 ‘잃어버린 마을’이라 불리는 곤을동이 있다. 제주4·3사건으로 지금은 사라진 곤을동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그 당시 아픔을 전하고 있다. 화북동의 별도봉, 삼사석, 해신사, 환해장성, 화북진지 등을 걸으며 화북의 옛길을 생각해보는‘화북 옛길 걸을락’도 조성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