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역린(逆鱗)’도 건드려야 한다
때론 ‘역린(逆鱗)’도 건드려야 한다
  • 김계춘
  • 승인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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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발언 등 ‘배신의 정치’ 낙인
‘역린’ 건드린 유승민 결국 사퇴
한비자 “군주의 愛憎 잘 살펴야”

‘현장의 民心’ 대통령과 달라
劉, 여권 대선주자 지지도 1위
나라 위해선 ‘역린’도 건드려야

유승민이 마침내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람들은 그의 사퇴를 두고 ‘역린을  건드린 결과’라고 평했다.


‘역린(逆鱗)’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할 때 주로  쓰인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비자(韓非子)는 위나라 영공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그의  세난(說難)편에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위나라 영공에게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모친이 병이 났다는 연락에 미자하는 명령을 사칭하여 군주의 수레를 타고 다녀왔다. 위나라 국법으로는 허가 없이 몰래 군주의 수레를 탄 자는 월형(다리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영공은 이 일을 알고도 미자하를 칭찬하면서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 월형의 위험을 감수하다니’ 하고는 벌을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가 총애(寵愛)를 잃었을 때 또 죄를 지었다. 영공은 ‘너는 예전에도 군명을 사칭하여 내 수레를 멋대로 타더니…’하며 지난 일까지 모두 덧붙여 죄를 물었다.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군주의 애증(愛憎)이 변한 게 문제였다.
 

한비자는 용과 군주의 노여움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용은 순한 동물이다.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턱 밑에 지름이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붙은 비늘, 역린이 하나 있다. 만약 이것에 손을 대는 자가 있으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그 역린이 있다.”
 

용(龍)에게 ‘거꾸로 난 비늘’은 감추고 싶은 수치스러운 것일 터다. 요즘 말로 치면 일종의 ‘치명적인 콤플렉스’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은 과연 무엇이며, 유승민은 그 역린을 진짜로 건드린 것인가.
 

그 해답은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후의 각종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유승민은 원내대표 출사표(出師表)에서 “할 말은 하지만 찹쌀떡 같은 공조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당시 당 안팎에선 ‘공조’보다 ‘할 말을 한다’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분석했다.
 

야당이 명연설이라고 호평한 지난 4월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청와대의 아픈 곳만 건드린’ 것으로 평가받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는 말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박 대통령에겐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런 일련의 감정들이 켜켜이 누적되며 결국은 ‘배신(背信)의 정치’로 귀착됐다.
 

한비자는 군주의 애증을 살펴보고 유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유가의 주요 경전인 ‘효경(孝經)’을 보면  “천자에게 간쟁(諫諍)하는 신하 7명이 있으면 도가 없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에게 간쟁하는 신하 5명만 있다면 나라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고금을 막론하고 명군(名君)은 이 같은 ‘간쟁’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성공적인 치세에 이르렀다.

승민의 경우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간쟁’이 될 수도, 아니면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승민의 말과 행동 속엔 ‘현장의 민심(民心)’이 최소한 청와대보다는 더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최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10일)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일시적인 현상일지 모르지만 유승민 의원은 19.2%의 지지를 얻어 18.8%를 기록한 김무성 대표를 0.4%p 차로 따돌리며 사상 처음으로 ‘여권 대선주자 지지도 1위’에 올랐다.
 

유 의원의 지지도는 6월 조사와 비교하면 무려 13.8%p 수직 상승했다. 원내대표직을 내려 놓으면서 소신(所信)을 굽히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제9대 왕인 성종은 재변(災變)이 잇따르는 데도 신하들이 아무런 말이 없자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내가 부덕한 탓이니 어느 누구라도 나서 무슨 말이라도 직언(直言)을 해달라. ‘역린’을 건드릴까 두려워하는 것인가?” 
 

때론 ‘역린’도 건드려야 한다. 그것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당은 물론  야당 또한 결코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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