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음을 알고 있다. 모두가 쓰고 싶은 만큼 쓸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기에,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따라서 자원의 유한함은 자원의 배분에 따른 다툼을 필연적으로 유발한다. 이는 정치적 영역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자원배분의 다툼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포크배럴(pork barrel)’이 있다. 과거 미국에서 농장주가 돼지고기통에 한 조각씩 고기를 던져줄 때 모여드는 노예의 모습에 빗대어, 한정된 예산을 서로 가지려 다투는 행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과 유사하게 최근 제주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용어로 ‘예산전쟁(budget war)’이 있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예산전쟁이라는 용어는 학술논문에서도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예산전쟁은 ‘예산 결정과정에서 벌어지는 협상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자들이 예산에 자신의 정치적 이념·가치·이익을 반영하는 시도를 하는 중, 상호간 타협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고수함으로써 극심한 갈등 속에 극한적 상황이 야기되고 그 결과 정상적인 예산과정의 파국이 발생하는 경우’라고 정의된다.
현재 제주에서도 학술적 정의에 비해 경중은 다르겠으나 ‘예산전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6일부터 제332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1차 정례회가 시작돼 ‘2014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과 ‘2015년도 제2차 세입·세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례회 기간 동안 지난 한 해 쓰기로 한 돈을 제대로 잘 썼는지를 살펴보고, 올 해 추가로 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에는 여러 정책과 사업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가늠해보고,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인지 따져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면서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한 평가를 내림에 있어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은 없으며, 과학과 기술이 진일보한 현대사회에서도 ‘결과의 예측’이라는 것은 완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형평성·민주성·효율성·효과성 등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와 ‘어떤 예측 결과를 수용할 것인가’는 결국 ‘주관적인 판단’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예산 편성시 수립한 기준과 예측결과를 고수하고자 할 것이며, 의회는 그 기준과 예측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정된 예산을 어떤 정책과 사업에 투입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전쟁’이라고 표현될 만큼 치열한 갈등을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첫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치열한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주관적 판단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야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칫 시끄럽게도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끄러운 과정에서 명분과 동의를 얻기 위해 자기 논리를 수정하기도 하고,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시끄럽긴 하나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이기에, 침묵의 조용함 보다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산과 관련된 대립과 갈등이 보다 더 바람직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이다. 그 것은 각자의 주관적 판단 기준을 고수함으로써 한정된 예산에서 자기 몫을 더 챙기기 보다는 도민의 ‘삶’과 ‘공감’을 더 챙기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예산 결정과정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챙겨가는 ‘남의 몫’ 또한 결국 도민의 삶의 영역에 속해있다. 결국 내 몫이나 남의 몫이나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않는 것이 ‘예산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